(역대상 15:1-29, 규례대로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한 번의 실패 뒤에 이어질 가능한 일들은 무엇일까?
첫 실패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고
똑같은 실책을 반복하여 역시 동일한 실패를 낳는 경우.
실패 후에 두려움과 무력감에 사로잡혀
도무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경우.
실패를 잘 분석하여 무엇이 문제였는지 파악하고
제대로 다시 시도하여 바른 결과를 낳은 경우.
당연히 마지막의 예가 가장 좋은 답이다.

다윗의 언약궤 운반이 이러했다.
다윗은 고집스럽게 실책을 반복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일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문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찾아냈다.
답은 성경에 있었다.
백성들의 정성과 열성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미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성막의 운반법을 지키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아니 그 운반법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무엇보다도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그것을 말하지 않은,
아니 생각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다윗도 다시금 신중하게 성경적 근거를 찾도록 지휘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문제들을 모두 시정했다.
이들은 그에 대한 “규례”를 찾았다.
성막, 특히 언약궤의 운반을 위한 “규례”가 있었다.
그것은 수레에 실어 나르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손을 대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언약궤에는 고리가 달려 있고
거기에 채를 꿰어 레위 사람들이 그것을 어깨에 메어 운반해야 했다.
그렇게 하도록 모든 기구들이 설계되어 있었다.
다윗은 문제를 정확히 알아냈다.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혹 하나님께서 명확하게 말씀하지 않으신 것이라면
정성과 열성과 혼신의 힘을 다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지시하신 일이라면 그대로 해야 한다.
그것은 정성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의 지침을 어기는 것은 그 어떤 정성으로도 상쇄되지 않는다.
될 수 없다.
정성이란 사실 종교적으로 볼 때 거의 자기만족이다.
하나님은 이방에서처럼 신앙을 종교로써 접근하도록 허용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도록 지침을 주셨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종교적 열심, 즉 자기만족에 빠진다.
하나님은 자기를 만족시키기 위한 도구가 된다.
그것은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들어 장난하는 것이다.

정답은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령한 대로”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고 말씀을 역시 빠지지 않고 묵상하고 기도시간을 지키는 것?
주일성수, 교회출석, 묵상과 기도,
그런데 이것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가 아니라 내 마음대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믿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내가 기껏해야 교회와 일요일만 신앙생활의 예로 든다는 것 자체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령한 대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의 청지기로 명하신 것이 있고,
내 직업에 대해 부여하신 사명이 있고,
내가 관계를 맺고 돌볼 이웃들에 대한 말씀이 있고,
특히 작은 자에 대한 특별한 지침이 있고,
그리고 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
이 모든 영역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아는 것이 내게 너무 부족하다.
이 모든 영역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아는 일에 내가 너무 무지하다.

그러므로 다윗이 언약궤 운반의 실책을 하나님 말씀대로 회복한 것과 같이,
나의 무디고 거칠고 시도도 못하고 잘못 시도했던 모든 청지기 사명들을
오늘 하루 온전히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며,
다시금 그대로 순종하는 일을 통해 온전히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