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6:1-15, 제쳐놓을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

구제 문제로 성도들 사이에 원망이 발생했다.
성경에서 ‘원망’ 하면 출애굽 이후 시내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떠오른다.
원망하는 일이 없으면 가장 좋겠지만 만일 그러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 일을 어떻게 해결하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을 해결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야기했다.
그러나 초대교회에서는 원망의 원인을 잘 찾아내고 그 문제를 잘 다루어 오히려 더 나은 결과로 나아갔다.

사도들은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것이 다른 일 때문에 “제쳐”져서는 안 된다.
구제든, 교회 행정이든, 접대든, 어떤 것이든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선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건너뛰는 일은 어떤 구실로도 합당할 수 없다.
무엇보다 우선순위의 정렬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최우선이므로 사도들은 그것에 전념할 것이다.
그리고 구제와 접대와 재정의 일을 맡을 사람을 뽑아 일을 분담한다.
그러면 여기서 말씀과 나머지 일이 분업화된 것인가?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사도들이 말씀에 전념하는 것은 “말씀 사역에 힘쓰”는 것이지 말씀을 독점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둘째로, 모든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은 최우선이다.
구제 문제로 새로 뽑히는 “집사”들은 말씀을 몰라도 되는 이가 아니었다.
그들은 행정요원으로 뽑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셈과 행정관리에 재능이 있는 자’, 또는 ‘객관성과 투명함에 뛰어난 자’를 뽑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을 택하라고 말했고,
성도들은 그 지시대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을 뽑았다.

여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란 하나님의 말씀과 무관한 것인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성령과 지혜와 믿음의 충만이란 있을 수 없다.
성령과 지혜와 믿음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왕성”하게 한다.

실제로 일곱 집사의 선출 후, 즉 사도들이 말씀에 전념하고 일곱 집사가 그들을 도와 구제의 일을 분담한 후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갔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이 있다.
일곱 집사 가운데 하나인 스데반의 사역을 보면
그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라는 데에는 당연히 그가 하나님의 말씀 사역을 한다는 것이 포함된다.
그는 회당에서 반대자들과 논쟁할 때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는 자였다.
그가 가지고 있는 지혜와 성령이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는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 강림 때, 그리고 그 이후 말씀의 사역을 한 것과 같이
똑같이 구약 성경을 풀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는 말씀 사역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도나 집사나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제쳐 놓고” 다른 것을 먼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최우선이다.
사도에게도, 집사에게도, 모든 성도에게도 그렇다.
그것은 모든 성도가 말씀을 늘 묵상하며 그 뜻을 이해하며 그것을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뿐 아니라 “말씀”은 “사역”이 되어야 한다.
이것도 모든 성도에게 그렇다.
바울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하라고 했다.
말씀의 사역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누구나 다른 사람의 말씀 사역을 통해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것은 누구나 다음 차례로 믿을 자를 위해 말씀 사역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

어떤 재능이나 은사로도, 어떤 부르심이나 사명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는 일은 정당화될 수 없다.
모든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에서만 비롯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