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from September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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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9.30 묵상: 질그릇 속의 보배

by 이 병철

(고린도후서 4:1-18, 질그릇 속의 보배) 사람의 눈은 겉만 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속에 있다. 속에 무엇이 있는가가 그를 결정한다.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이다. 속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로 가득하면서도 얼마든지 “속임으로” 겉을 화려하게 미화할 수 있다. 그때 세상은 그를 높일 것이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서 결코 높아질 수 없다. 그의 겉이 아니라 속에 있는 것이 바로 […]

2020.9.29 묵상: 새 언약의 일꾼

by 이 병철

(고린도후서 3:1-18, 새 언약의 일꾼)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 바울에 대해 제기되었던 문제의 핵심은 그의 사도직에 관한 의문이었다. 신학적인 문제제기든 인간적인 선호 내지는 혐오의 문제든 바울은 이에 대해 변명이나 해명으로 맞서지 않는다. 그는 누구의 추천서도 또는 자신의 진술서─‘자화자찬’이 될 “자천”─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사도직, 그것은 어떤 증명서가 입증해주는 자격이 아니었다. 사도들은 혹 예루살렘 교회가 발행해준 사도 […]

2020.9.28 묵상: 근심을 넘어 기쁨으로

by 이 병철

(고린도후서 1:23-2:17, 근심을 넘어 기쁨으로) 바울 사도와 고린도 교인들 사이에 생긴 문제는 인간의 이해력 한계로 인한 오해도 있고, 분파적인 적대로까지 이른 악의적 곡해에 의한 것도 있었다. 전자는 자초지종을 잘 설명하면 오해가 풀릴 수 있는 문제다. 고린도 교회에 방문할 계획이 다소 변경된 것으로 인해 생긴 오해에 대해 바울은 그것이 “육체의 지혜”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

2020.9.27 묵상: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함

by 이 병철

(고린도후서 1:12-22,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함) 바울 사도와 고린도 교인들 사이에 오해가 있었다. 먼저 쓴 편지에서 그 교회 안에 이미 있던 분파적 움직임의 상황을 알 수 있고, 특히 바울이 고린도를 방문하려는 계획이 예정했던 것과 달리 진행됨으로 인해 생긴 문제가 있었다. 교인과 지도자 간의 갈등은 없으면 좋겠지만 종종 발생한다. 아니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심각하고 불미스러운 모습으로 발전하는 […]

2020.9.26 묵상: 위로 받고 위로하는 자

by 이 병철

(고린도후서 1:1-11, 위로 받고 위로하는 자) 고린도후서는 첫 편지와 다른 분위기로 시작한다. 고린도전서에서와 같은 찬양, 감사의 서두 인사말을 간략하게 줄이고 바로 당면한 현실의 상황에 직접 대면한다. 그것은 “환난”과 “고난”의 문제였다. 이 단어들이 계속 이어진다. 아주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것은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이었으며 “살 소망이 끊어지고”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을 정도였다. 이것은 복음의 최전선에서 맹렬한 […]

2020.9.25 묵상: 누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by 이 병철

(창세기 50:15-26, 누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아버지 야곱의 죽음은 요셉의 열 형들에게는 큰 위기를 가져다주었다. 문제는 그들이 요셉에게 “행한 모든 악”의 보복에 관한 것이었다. 17년 전에 이미 요셉과 열 형제 사이에 그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이제 중대한 상황의 변화가 발생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이다. 혹시 17년 전의 용서와 화해는 아버지께서 살아계신 동안에만 유효한 한시적인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이들이 […]

2020.9.24 묵상: 조상들에게로, 선조와 함께, 백성에게로 가는 길

by 이 병철

(창세기 49:29-50:14, 조상들에게로, 선조와 함께, 백성에게로 가는 길) 야곱이 숨을 거두었다. 그는 “나그네의 길”로 “험악한 세월”을 살았지만 마지막에 크고 놀라운 복을 누리고 죽었다. 그의 열두 아들 각각을 위해 깊이 생각해온 말씀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통찰한 각 지파와 이스라엘의 미래를 내다보는 그 말씀을 하나씩 들려주고 그는 이 땅에서의 생을 마쳤다. 그는 모든 것을 다하고 숨진 것이다. 이 […]

2020.9.23 묵상: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by 이 병철

(창세기 49:13-28,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야곱이 열두 아들 각각에게 유언하는 내용은 다 듣기 좋은 내용은 아니다. 아니 어떤 것은 “저주”이며 불행이 예고되기도 하고 경고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말은 모두를 기분 좋게 하려는 화려한 수사가 아니다. 몇몇 아들의 경우에는 그들에 대한 특별한 사건과 기록이 있어 그와 직접 관련되는 내용을 알 수 있다. 르우벤, 시므온, […]

2020.9.22 묵상: 중간결산

by 이 병철

(창세기 49:1-12, 중간결산) 야곱이 십칠 년 동안 애굽에서 마지막 인생을 살았던 것은 참으로 놀라운 축복의 세월이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그가 열두 아들 모두와 함께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셉이나 베냐민에 보였던 그의 특별한 사랑과 감정을 보면 야곱은 매우 섬세한 감각의 사람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제는 그의 충만한 감사와 사랑과 기쁨을 마음껏 펼쳐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

2020.9.21 묵상: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by 이 병철

(창세기 48:8-22,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지만 수천 년 전의 옛날에는 더욱, 적출(嫡出) 여부와 태생의 순서가 한 집안과 사회에서의 위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서자는 결코 적자의 권위를 공유할 수 없었고, 장유의 순서는 결코 뒤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는 얼마든지 상대화되는 인간의 질서였다. 인간 사회에서 이것을 절대시한 것과 비슷하게 하나님께서도 장자를 중시하고 그 권위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