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from March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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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3.31 묵상: 다윗의 자손, 다윗의 주

by 이 병철

(마가복음 12:35-44, 다윗의 자손, 다윗의 주)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본 사람들은 곧 바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치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것은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말씀을 정확히 알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고백이었다. 그들은 두 가지를 고백하는 것이다. 약속된 메시아(그리스도, 구세주)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는 사실이요,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예수께서 바로 그 구세주라는 사실이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이를 더 […]

2020.3.30 묵상: 목숨 너머

by 이 병철

(마가복음 12:18-34, 목숨 너머) 예수께 부활 논쟁을 벌인 사두개인들은 성전과 관련된 활동에 집중하며 로마의 통치에 협력하는 귀족들과 제사장이라고 했다. 그들은 나라를 잃고 영적으로도 혼란스러운 때라도 기득권을 누리는 자로서 현세만으로도 충분한 자일 것이다. 그들은 “부활이 없다 하는” 자들이었다. 이 세상에서 사는 것만이 전부였다. 그들에게는 죽음 뒤에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존재도 의미도 불필요했다. 더구나 부활은 모세의 율법과도 […]

2020.3.29 묵상: 누구의 포도원, 누구의 건축인가?

by 이 병철

(마가복음 12:1-17, 누구의 포도원, 누구의 건축인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중심에서 그 권력의 핵심에 있는 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신다. 포도원을 비유로 들었는데, 주인에게서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소출로 갚아야 하는 농부들이 지대를 내기는커녕 주인의 종들과 심지어는 그 아들마저 해하고 포도원을 아예 늑탈하려는 비극적 이야기였다. 그것은 당시 상황을 비유로 하신 말씀이며 그것을 들은 종교지도자들이 금방 자신을 가리켜 하신 말씀인 […]

2020.3.28 묵상: 믿음, 권위의 출처

by 이 병철

(마가복음 11:20-33, 믿음, 권위의 출처) ‘믿음’은 예수께서 시종일관 강조하셨던 것이다. 무화과나무의 저주에 뒤이어 믿음에 대해 말씀하시고, 또한 그 가운데 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강조하셔서 혹 믿음이 곧 만능의 성취로 이해되기 쉽다. 아마도 이 구절과 관련하여 우리 귀에 가장 솔깃한 부분은 “그대로 되리라”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 되기를 바라는가? 대체로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믿는 것이 그대로 되기를 […]

2020.3.27 묵상: 주가 쓰시겠다

by 이 병철

(마가복음 11:1-19, 주가 쓰시겠다) 예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일, 이 장면을 읽을 때마다 ‘순종’의 의미를 생각한다. 그것은 미리 계획된 행사가 아니었으며 예약된 대여가 아니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제자들과 함께 오신 예수님은 분명 걸어서 이동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다 와서는 굳이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시겠다는 것이다. 그 뜻을 누가 알았을까! 제자들은 몰랐을 것이다. 만일 알았다면 […]

2020.3.26 묵상: 예루살렘으로

by 이 병철

(마가복음 10:32-52, 예루살렘으로) 예수님은 드디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 그 길을 “앞에 서서” 가셨다. 이미 여러 번 말씀하셨고, 이제도 다시 말씀하신다. 왜 예루살렘에 가시려는지. 거기서 “당할 일”이 있다. 이번에도 긴 고난에 대한 말씀과 짧은 반전을 언급하셨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 “당할 일”이 무엇인지 아는 우리로서 제자들의 관심과 태도를 보면 그 상황을 이해할 수 […]

2020.3.25 묵상: 내게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이신 주님

by 이 병철

(마가복음 10:17-31, 내게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이신 주님) 예수께서 한 사람―다른 복음서에서 그는 청년이요 관리로 나온다―의 질문,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는 물음에 최종적으로 답하신 것은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였다. 그는 율법의 계명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던 자다. 예수님이 “그를 보시고 사랑”하실 만했다. 그러나 예수께 질문한 대답을 듣고 그는 큰 고민에 빠졌다. […]

2020.3.24 묵상: 창조 때로 소급

by 이 병철

(마가복음 10:1-16, 창조 때로 소급)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는 자다. 그들은 배우려는 자가 아니라 시험관 행세를 한다. 진정으로 무엇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께 올무를 씌우기 위해, 궁지에 처하도록 도발한다.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이혼의 정당성에 대한 질문은 바리새인들 가운데도 상당한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아내의 부정을 발견하지 않으면 이혼해서는 안 된다, 아내가 음식을 망치기만 해도 이혼할 수 […]

2020.3.23 묵상: 누가, 무엇이 크냐

by 이 병철

(마가복음 9:30-50, 누가, 무엇이 크냐) 예수께서 제자들과 계실 때는 점점 더 특별한 말씀을 하신다. 고난에 대해서 예고하시고, 그 안에는 심지어는 죽음도 포함된다.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말씀도 하시는데 제자들은 다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하지 못해도 무엇이 더 좋은지, 바랄만한지는 구분할 수 있다. 고난과 죽음은 안 좋고 살아나는 것은 좋다. 전체를 이해하지 못할 때 빠지기 쉬운 것은 […]

2020.3.22 묵상: 믿음 없는 것을 도우소서

by 이 병철

(마가복음 9:14-29, 믿음 없는 것을 도우소서) 예수께서 세 제자와 함께 산 위에서 특별한 시간을 가지시는 동안 산 아래에서는 약간의 소란이 있었다. 귀신 들린 아들을 위해 아비가 제자들에게 간구하였지만 치유되지 않았고, 아마도 그에 대해 큰 무리와 서기관들의 논쟁으로까지 번졌다. 그 사정을 듣고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세대”에 대해 탄식하셨다.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에게 고난에 대해 예고하시고 다가오는 십자가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