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from January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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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31 묵상: 화평의 언약

by 이 병철

(창세기 21:22-34, 화평의 언약)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약속하시고 그에게 주신 것은 종교적인 의미로 국한할 수 없다. 흔히 ―영과 육의 이원론적으로― 구분하는 식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과 사명이 영적인 것으로만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실제로 육신을 통해 아들을 얻고 그는 세상 사람들과 화평의 사람으로 경제적 · 정치적인 관계를 맺는다. 그러므로 ‘영적’이라 함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

2020.1.30 묵상: 말씀하신 대로

by 이 병철

(창세기 21:1-21, 말씀하신 대로) 사라의 잉태와 출산은 자연세계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선하신 권능으로 행하신 기적이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된 일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거듭 강조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다.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다. 그것은 곧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즉 “말씀하신 대로” 노부부에게 아들이 […]

2020.1.29 묵상: 너는 아내가 있는 남편임이라

by 이 병철

(창세기 20:1-18, 너는 아내가 있는 남편임이라) 이 본문의 말씀은 배경이 좀 의아하다. 역사의 기록이라도 성경은 꼭 시간 순으로 편집한 것이 아니며, 더구나 20장의 시작에 “그 일 후에”와 같은 이전 사건과의 전후관계를 밝히는 표현도 없어, 오늘의 본문이 다른 시점에 벌어진 일의 기록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이러기로 했다는 변명을 하는데, 이는 부부가 1년 […]

2020.1.28 묵상: 소돔에서 구출되었으나

by 이 병철

(창세기 19:24-38, 소돔에서 구출되었으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창세기에서 벌써 세 번째로 나오는 하나님의 심판 사건이다. 홍수 심판은 방주에 들어간 노아 식구 여덟 명과 짐승들을 제외한 전 지구적인 멸망이었다. 바벨탑 사건은 “하늘에 닿”을 건축물로 “우리 이름을 내”려는 교만함을 하나님께서 치신 심판이었다. 그것은 직접 생명을 취한 멸망은 아니지만 인류에게 큰 불행을 안긴 사건이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앞의 […]

2020.1.27 묵상: 농담과 진담 사이에서

by 이 병철

(창세기 19:12-23, 농담과 진담 사이에서) 하나님의 천사들은 이 도시에 의인이 열 명이 되지 않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분명한데, 아브라함이 간파한 바대로 “의와 공도”란 의인이 악인과 함께 멸망하지 않는 것이므로 그 소수의 의인들을 구하는 것이 이 천사들이 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이 순간 하나님의 긍휼은 롯에게 “속한 자”들을 일단 의인으로 구분하는 데까지 […]

2020.1.26 묵상: 소돔의 부르짖음

by 이 병철

(창세기 19:1-11, 소돔의 부르짖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죄악이 심히 무거”운 상황에 대해 실사를 하러 그리로 가신다고 계획을 알려주셨다. 아브라함은 방금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 목적이 “의와 공도”에 있음을 들었고, 분명 그도 들어 알고 있을 소돔과 고모라의 상황에 비추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임할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그는 거기서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는 […]

2020.1.25 묵상: 의와 공도

by 이 병철

(창세기 18:16-33, 의와 공도) 아브라함은 세 사람을 맞을 때 쉬시다가 “지나가소서” 하고 아주 편안한 환대를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여기에 쉬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셨고, “능하지 못한 일이”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이번에는 직접 사라에게 들으라고,  나이 많아 늙은 노부부가 1년 뒤에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맨 처음에 약속해주신 “큰 민족”은,  아브라함이 “복”이 되는 그 길은 바로 이 아이를 통해 […]

2020.1.24 묵상: 영적 충만, 주께 하듯

by 이 병철

(창세기 18:1-15, 영적 충만, 주께 하듯) 어제 본문과 오늘의 내용은 시간적으로 매우 인접한 간격에 벌어진 일이다. 똑같이 아브라함이 99세의 때이다. 어제 말씀에서 하나님은 네 번째 약속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다. 그것은 시종 “언약”으로 강조되었다.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이삭이 태어나게 하실 것이며, 그 일이 “내년 이 시기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도 동일한 시기가 언급됨으로 ―“내년 이맘 때”― […]

2020.1.23 묵상: 아브라함, 사라, 이삭, 언약

by 이 병철

(창세기 17:1-27, 아브라함, 사라, 이삭, 언약) 다시 세월이 흘러 13년이 지났다. 아브람이 기다리지 못하고 하갈을 통해 낳는 아들로 “네 몸에서 날 자”, “네 자손”이라는 약속을 이루려 했던 10년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났다.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을 바로 그 “네 자손”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데도 처음 10년보다 더 긴 세월이 지나므로 아브람 부부는 그들의 잔꾀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던 것 […]

2020.1.22 묵상: 갈등, 대가, 화평

by 이 병철

(창세기 16:1-16, 갈등, 대가, 화평)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세 번째로 주신 약속은 맨 처음의 “큰 민족”과 그 다음의 “자손”보다 더 분명한 “네 자손”에 대한 말씀이었다. 더구나 지금껏 노아 한 사람만 해당되었던 약속을 넘어선 “언약”의 확고함, 즉 하나님과의 ‘결합’까지 아브람은 경험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도록 사래의 불임은 풀리지 않았고 “네 자손”의 약속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이쯤 되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