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9:1-23,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므로)

요셉의 시련이 계속된다.
그는 이미 형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 그렇다면 어쩌면 그는 이제부터는 더 이상의 죽음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미 죽었으니 그 어떤 시련이 닥쳐도 죽음만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시련들은 보통의 고난이 아니었다.

그는 애굽에 끌려가서 바로 왕의 친위대장 집안에 노예로 팔린다.
그러나 그의 성실함과 총명함이 인정을 받아 주인의 총애를 받고 그로 인해 그 집이 아주 잘 되었다.
그러나 주인 부인의 욕정의 희생양이 되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게 된다.

형들에 의한 살해나 진배없는 노예매매,
주인의 부인을 겁탈하려한 치한으로 몰려 감옥에 가게 된 것,
그가 당한 모든 일이 억울한 고난이었다.
그가 형들을 죽이려다 발각되어 도리어 당하거나,
보디발의 아내에게 흑심을 품고 접근했다가 잡힌 것이 아니었다.
모두 그에게 시련을 가한 자들의 근거 없는 음모에 의해 벌어진 일이었다.

오늘 본문에서 여러 번 반복된 중요한 말씀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라는 설명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도 억울한 시련을 당할 수 있다.
아니, 세상의 악함을 생각할 때 그러한 일이 매우 잦다고 말해야 더 진실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세상에서 어떤 어려움도, 억울한 일도 없이 평안하게 지내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믿음은 억울한 시련 가운데 흔들림 없이 더 바르게 살 이유와 힘을 준다.
심지어, 이 세상에서 고난이 없는 것은 어쩌면 세상의 삶의 방식대로 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성경적 의미에서는 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요셉이 그러하였다.

그러나 억울한 시련 가운데도 그는 믿는 이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불평하지 않고 보복하려 하지 않고
그 악한 상황을 잘 견디고 오히려 최선의 성실과 친절과 총명으로 자기의 직분을 잘 감당하는 자였다.
그리고 그의 성실함은 결국 인정을 받고 주위에 유익을 끼친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에게 억울한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러한 시련을 이기게 된 것이다.
그것이 그의 “형통”이었다.
“형통”은 어려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 가운데서도 정도를 지키는 것이다.

그는 억울한 고난 가운데도 믿음의 사람으로 자신을 잘 지켜서 결국 그에게 걸맞는 일을 맡게 된다.
오늘 본문에 또 많이 나오는 단어는 그와 관련된 어휘들이다.
“위탁”(세 번), “맡기므로”, “맡긴 것”.
이 단어들은 모두 그의 “손”과 직결된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의 손에 맡긴 것을”.
아, 그의 손은 맡은 일을 신실하게 해내는 손이다.
책임감 있게 충성스럽게 해내는 손.
그러한 “손”을 사람들이 인정했고 그에게, 그의 손에 일을 맡겼다.
친위대장의 집에서도, 감옥에서도.
그는 보디발 집의 “총무”였고, 간수장에 의한 옥중 죄수의 관리자였다.
보디발도 간수장도 그에게 맡긴 것은 더 살펴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가 정직하고 마땅하게 “처리”했다.

아직 요셉의 일생의 일부분에 해당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이미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무엇인지, 성도의 “형통”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혹시 일반적인 상식과 얼마나 다른지도 분명해진다.
어쩌면 나쁜 짓을 해도 어려운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것,
모든 일이 잘 되기 위해서는 죄라도 짓는 것,
그것이 형통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여겨지는,
심지어는 간증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임마누엘과 형통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시므로,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바라는 일이 내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이 억울한 시련을 바라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 개인과 구조의 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성도가 거룩하고 겸손하고 신실하며 유익을 끼치는 자로 살기를 바라시고 그렇게 살도록 도우신다.
나는 참으로 연약하여 억울한 일을 만나지 않고, 유혹과 시험에 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더욱 바랄 것은 노예로서도, 죄수로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로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