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50:15-26, 누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아버지 야곱의 죽음은 요셉의 열 형들에게는 큰 위기를 가져다주었다.
문제는 그들이 요셉에게 “행한 모든 악”의 보복에 관한 것이었다.
17년 전에 이미 요셉과 열 형제 사이에 그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이제 중대한 상황의 변화가 발생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이다.
혹시 17년 전의 용서와 화해는 아버지께서 살아계신 동안에만 유효한 한시적인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이들이 의지할 수 있던 요셉 위의 사람인 아버지가 안 계시는 상황이 되었으니
이제 요셉은 그의 권력을 마음껏 집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형들에게 17년간 유지된 이 평화는 오직 아버지가 살아계심으로써만 가능했던 것으로 보였다.
그것은 무엇보다 아버지가 아들 ─아무리 애굽 총리라 할지라도─ 위에 있기 때문에
요셉의 보복이 집행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형들은 두려움이 엄습한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요셉에게 다시 간청해야 했다.
그들이 의존할 수 있는 존재는 요셉 위에 있는 자, 아버지뿐이었고,
이제 돌아가셔서 안 계서도 아버지의 권위에 다시 의거하여 요셉에게 부탁한다.
요셉이 형들을 용서하기를 아버지가 원하신다, 그러므로 이제 용서해 달라, 그것이 그들의 간청이었다.
그 부탁의 진정성을 위해 그들은 다시금, 거듭 자신들이 요셉의 “종”임을 고백한다.

그 말을 듣고 요셉은 울었다.
형들의 두려움이 불쌍하기도 하고, 자신의 용서를 믿지 못하는 것이 야속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본질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에 있었다.
형들이 의존하는 자는 “아버지”였지만, 요셉은 아버지보다도 위에 있는 분을 거론한다.
만일 요셉의 용서가 아버지의 뜻과 아들들 사랑에 기초했다면, 그는 ‘내가 아버지를 대신하리이까’라고 말했을 것이다.
‘나도 여러분과 똑같이 아버지의 아들로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일을 시행하리이다.
혹 내가 여러분을 보복하고 싶어도 아버지의 뜻이 내 위에 있으므로 그것에 순종하리이다’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이와 다르게 말한다.
그는 “아버지”가 아니라 “하나님”을 거론한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그것은 무슨 뜻인가?
요셉의 형들 용서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만일 아버지의 뜻에 따라 그렇게 한 것이라면
형들이 두려워하듯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에는 요셉이 이제는 계시지 않는 아버지의 뜻을 부정해도 할 말이 없다.
요셉은 ‘이제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으니 나의 17년 전 용서는 그 유효기간이 지났소’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용서는 아무리 장수해도 돌아가실 수밖에 없는,
아무리 부모의 권위가 자녀보다 위에 있어도 살아있는 동안에만 그 존재가 유효할 수 있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분의 권위에 의한 것이었다.
그는 모든 인간, 모든 권위, 모든 변개하는 상황 위에 계신 분의 권위 아래 있다.
그분이 용서를 원하셨기에, 그분이 용서할 마음을 주셨기에 순종한 것이므로
여전히 우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계시는 한 그의 용서와 순종은 유효하다.
아,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다고 해서, 요셉이 죽는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서의 용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이 말은 요셉이 아버지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형들을 용서하였다는 뜻일 뿐 아니라,
실제로 그 용서를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형들은 아버지의 권위를 빌어 아버지께서 용서를 원하신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요셉이 듣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용서를 한 자는 요셉일뿐 아니라, 그보다 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무슨 의미를 내포하는가?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으시면 누구도 용서받을 수 없음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시면 요셉이 용서한들, 아버지가 용서한들 하나님께 그 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진실로 모든 범죄에 대한 심판의 권한은 하나님께만 있다.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은
정의를 사모하고 정의를 행하되 불의를 내가 직접 심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재판관이시다.
형들이 요셉에게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고 애원하는 것은
‘우리의 악을 갚지 마소서, 우리를 심판하지 마소서’라는 간청이다.
그들은 요셉이 원하면 그들의 악을 갚고, 그들을 심판할 수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이에 대해 분명하게 진리를 ─정답을─ 말한다.
하나님만이 악을 갚으시고 심판하실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의 주권을 아는 자만 겸손할 수 있다.
내가 세상의 주권자가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최대한의 책임을 다해야 할 사명이 있지만
그것이 나에 의해서 세상에 정의가 행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 바로 잡으시고 고치시고 벌하시고 용서하시고 심판하시고 구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내가 재판관인 듯이 하는 자에게서는 사실 정의도 자비도 나올 수 없다.
자기가 신인 자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은 교만뿐이다.
실책뿐이다.
누구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
오로지 하나님께 순종할 뿐이다.
요셉은 참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였다.
그는 참으로 겸손한 자였다.
이것을 내가 제대로 배울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