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9:13-28,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야곱이 열두 아들 각각에게 유언하는 내용은 다 듣기 좋은 내용은 아니다.
아니 어떤 것은 “저주”이며 불행이 예고되기도 하고 경고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말은 모두를 기분 좋게 하려는 화려한 수사가 아니다.

몇몇 아들의 경우에는 그들에 대한 특별한 사건과 기록이 있어 그와 직접 관련되는 내용을 알 수 있다.
르우벤, 시므온, 레위가 그러했다.
가장 긍정적으로, 축복의 내용으로 일관된 유다와 요셉은 형제들 가운데 그들의 뛰어남에 상응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아들에게는 이 유언의 내용들이 그들의 삶에서 어떤 근거가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마지막 구절에서 이 유언은 “그들의 아버지가 ···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는 말로 정리된다.
이것을 “축복”이라 하였고, “각 사람의 분량대로” 주어진 것이라고 하였다.
앞으로 있을 일의 이 예언에는 “복”뿐만 아니라 분명 “저주”도 있다.
그리고 어떤 아들은 복된 미래가 예언되는가 하면 반대로 어떤 아들은 저주스러운 암울한 일들이 예고된다.
두 측면이 다 예고되는 아들도 있다.

각 아들의 미래가 특정하게 예언되고 그대로 시행될 것인지,
시행되었는지를 논하는 것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야곱의 이 유언을 누구는 이러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고 누구는 저러할 것이라고 각각 예언되면
그는 거기서 벗어날 수 없으며, 그는 어떻게 살아도 그렇게 되고 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없다.
가장 복된 삶을 살고, 가장 귀한 복이 예언된 요셉의 후손,
그 장자로 인정된 에브라임은 과연 유다에 버금가는 가장 강대한 지파를 이루었고,
여호수아와 같은 특출한 지도자도 거기서 나왔지만,
사사 시대의 역사에서 그들은 대체로 시기하는 ─딴지를 거는─ 자들이었으며
북이스라엘의 중심으로 우상숭배의 장소가 되었다.
이 귀한 축복의 말씀을 그 후손들을 지켜내지 못했다.

분명 어떤 말씀은 특정인에게 특별하게 이루어질 일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열두 아들 각각에게 다양하게 주어진 이 말씀은
이들이 ─모든 성도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만날 상황의 다양함을 예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탐욕이나 폭력의 유혹을 만나기도 하고 다스리는 때도 있지만 압제되는 경우도 있다.
추격하는 자가 되기도 하고 추격을 받기도 한다.
건장한 나귀인 경우도 있고 독사가 될 수도 있으며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 암사슴도 되고 빼앗고 움키는 이리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적이나 원수를 향해 그리 할 수도 있고,
죄에 빠져 의로운 자를 괴롭히는 자가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경우에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것은 너무도 분명하지 않은가.
죄로 인해 저주 받은 자로 살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살아야 한다.

야곱은 열두 아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간절히 바라는 한 가지를 분명히 언급한다.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이것은 야곱 자신이 구원받기를 바라는 간구도 되겠지만,
지금 열두 아들을 향해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모두가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인간은 다양한 상황에 직면하고 다양한 반응으로 그에 대면하고 실패와 성공, 패배와 승리로 점철될 것이다.
그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우리가 바랄 것은 “주의 구원” 아닌가.
이것을 기다리는 삶은 어떻게 살아도 결국 구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태평함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도 연약하므로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지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 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곡하게 바라는 기도의 삶이라 할 수 있다.
야곱 자신도 그러하고 그의 열두 아들 모두가 그러한 자이며,
그러므로 모두가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자다.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얻을 수 있는 구원이다.
그것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이 성도의 삶이다.

열두 아들에게 향한 열두 가지 내용의 이 말씀이 각각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여부는
이들의 후손, 지파에서 찾을 것이 아니다.
그것을 가지고 이 예언이 맞았느니 틀렸느니 할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는 삶을 사는가, 이것이다.
이 예언의 결과는 결국 나에게 나타난다.
이 말씀들은 내게서 응해진다.
어떤 말씀도 절망이나 태만이나 교만을 허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도는 부지런히 기다리는 자요, 간절한 자요, 오직 겸비한 자다.
그러라고, 그렇게 살라고 야곱이 이 말씀을 하지 않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