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5:1-15, 요셉의 믿음)

요셉이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였다.
온갖 만감이 거기에 다 들어있겠지만 그 순간 요셉의 북받치는 감정에는
무엇보다 그가 가고자한 마지막 지점에 이른 감사가 가장 컸을 것이다.
요셉은 형들의 “진실을 증명”하는 “시험”을 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범죄”의 고백을 통해,
시므온을 구하기 위해 돌아옴으로써,
베냐민이 “도둑질”한 것으로 몰렸을 때 공동의 연대책임을 요구함으로써,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다가 베냐민의 석방을 위해 자신만을 처분하도록 간구함으로써,
모든 “진실”이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험”이 없었다면 이들이 “진실”에 대면할 수 있었을까?
지난 22년 동안 “진실”하지 않고도 아무 탈 없이 지내온 이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시험”은 정말로 귀하고 중요한 은혜의 기회다.
이 순간이 없었다면 이들은 여전히 ─그렇다, 아, 뻔뻔하게─ 할 거 다 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가정예배도 드리고 가족의 생일잔치도 열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일을 그대로 ‘잘’ 하였을 것이다.
이들에게 “진실”의 “시험”이 주어진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물론 이 “시험”이 이들을 더욱 불량하게 하고, 더욱 기만적으로 되게 할 가능성도 있었을 수 있다.
그러나 요셉이 부여한 그 “시험”은 이들의 신앙양심을 아주 예리하게 자극했고,
아버지와 베냐민의 관계를 진지하게 목도할 기회를 주었다.
이들은 지난날의 자신을 너무도 명백하게 돌아볼 기회에 직면했다.
요셉은 특유의 지혜로 형들을 “진실”에 진지하게 대면할 기회로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형들과 이 가정의 회복을 위해 주신 은혜였다.
요셉이 하나님이 하신 일로 고백한 애굽에 노예로 팔려 총리까지 된 일과 똑같이,
형들이 “진실”에 대면하여 결국 범죄의 회개와 한 형제 됨의 회복에 이르게 된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요셉이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다고 고백한 그 “구원”은
우선은 기근 가운데 온 가족의 생명의 보존이지만,
그뿐 아니라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
그들 모두가 죄로 인해 영원한 죽음에 처할 수 있던 하나님 앞에서의 범죄로부터의 “구원”이요,
그렇게 위선적으로 기만적으로 엉망진창이 된 이 가정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인류를 위한 구원의 방주로서 회복되도록 베푸신 사명의 “구원”이다.

또한 더욱 놀라운 것은 믿음의 조상의 계보에 있는 아버지와 함께 사는 형제들보다
혼자 우상의 나라에서 이방 신의 제사장의 딸과 살면서도 하나님을 진실하게 알고 신실하게 의지해온 요셉의 믿음이다.
그는 총리라는 이유로 애굽의 종교들 속에서 자신을 더럽히지 않았다.
그가 지금까지 경험하고 고백해온 믿음과 삶은 참으로 진실하고 신실한 신앙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시는 대로 살아온 자다.
아, 이것은 원래 야곱 집에서처럼 공동체적으로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적으로 홀로 떨어진 자에게도 그렇게 하신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얼마나 큰 은혜를 베푸신 것인가.

요셉의 믿음은 형제들에 대한 용서와 그 근거로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인도하셨다는 지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것만도 참으로 놀라운 믿음이다.
그런데 그는 지금 하나님의 인도와 역사를 가족사적으로만 조명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야곱의 집안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이 모든 일을 주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하심은 이들의 범주를 넘어서는, 만방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때문이기도 하다.
요셉이 그것도 알았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다고 고백한다.
바로 왕은 요셉을 총리로 세우면서 전권을 그에게 위임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는 왕으로서 요셉보다는 높은 “왕좌”에 있는 자다.
그러나 지금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셨다고 고백한다.
아니, 이것은 선언이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바로 왕의 “아버지”로 삼으셨다!
여기서 무엇이 연상되는가?
요셉이 어려서 꾼 꿈은 형들의 곡식 단이 요셉의 곡식 단에 절하는 것,
그리고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열 명의 형들과, 그리고 부모와 열한 형제들에게로 금방 적용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요셉은 그 범위를 애굽 왕 바로에게까지, 그리하여 애굽 온 땅에게까지 확대한다.
실제로 바로(파라오)는 태양신이 점지한 자요, 태양신의 아들로 불려왔다.
어린 요셉의 꿈에서 바로를 왕으로 점지한 자, 바로를 아들로 낳은 그 태양(신)이 요셉에게 절한 것 아닌가!
바로의 아비가 요셉에게 절했으니 요셉은 바로 왕의 아버지 아닌가!
그리고 이것이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총리는 왕보다 높을 수 없지만 요셉은 왕보다 높은 총리다.
하나님이 그를 왕의 아버지로, 그 나라를 다스리는 자로 삼으셨다.
하나님의 이 세계적, 우주적 섭리를 요셉이,
17세 이후로 가족과 떨어져 22년을 우상들 나라에서 홀로 살아온 요셉이
제대로 알고 고백하고 있다.
이것이 성도를 도우시고 인도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