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6:1-14, 그들에게 피할 곳이 되라)

어제 본문에 이어 모압에 대한 경고가 계속 이어진다.
모압은 하룻밤에 망하여 황폐할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에게 오로지 통곡과 울음소리와 애통으로 귀결될 것이다.

그런데 멸망 받을 모압만 우는 것이 아니었다.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는도다”라는 외침이 들린다.
모압의 울음 외에 모압을 위한 울음이 있다.
오늘 본문에는 이 말이 더욱 강조된다.
“내가 ···를 위하여 울리라 ··· 내 눈물로 너를 적시리니”
선지자의 울음이든 하나님의 애통이든 이는 같은 마음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압을 위한 피난처까지도 생각하고 계시다!
3,4절이 모압이 유다에게 간청하는 말일 수도 있고,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당부하는 말씀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 핵심은 동일하다.
모압이 유다에게 피난처를 구하든
─“모압(땅)에서 쫓겨난 우리를 당신들 땅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모압의 피난처를 제공하라고 하시든
─“모압에서 쫓겨난 자들을 너와 함께 살게 하고 그들의 피난처가 되어 침략자를 피하게 하여라”─
핵심은 모압이 “피할 곳”을 하나님께서 유념하신다는 사실이다.
죄악으로 인해 심판받을 자가 피할 곳을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며,
그들이 피할 수 있도록 당부까지 하신다.
이것이 집을 나간 ‘탕자’를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아닌가!
하나님은 창조하신 모든 인류의 아버지 아니신가!

그런데 실제로 모압이 “피할 곳”이 어디인가?
당시의 역사에서 앗수르가 남쪽으로 몰려오면서 북이스라엘과 암몬이 망할 것이며,
유다도 큰 위협을 당할 것이다.
그때 모압도 산산조각 날 것인데 유다에게 원군을 청하여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모압이 진정으로 피할 곳, 모압이 살 곳은 어디인가?
유다의 요새들?
유다의 군사력?
아니다.
하나님은 그 당시의 유다가 아니라 근본적인 피난처를 말씀하신다.
아, 그곳은 사실 모압만의 피난처가 아니다.
바로 유다가 피할 곳이기도 하다!
온 세상이 피난할 곳이다!
“다윗의 장막에 인자함으로 왕위가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정의를 구하며 공의를 신속히 행하리라”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기의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은
─그 가운데 셋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한’ 왕이었지만─
“인자함으로 왕위가 굳게” 선 자도,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정의를 구하며 공의를 신속히 행하”는 왕은 아니었다.
그러한 왕이 ‘다윗의 왕위’에 앉을 자로 오실 것이다.
그는 이미 이사야가 여러 번 예고하고 예언하고 약속했던 구세주시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며,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를 “굳게 세우고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왕이다!
우리는 그를 너무도 잘 알지 않는가?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님만이 세상에게 “피할 곳”이다.
이 피난처를 하나님은 “교만”하고 “거만”하며 그 헛된 “자랑”으로 심판받을 모압에게도 제공하신다.
모압을 위해서도 그리로 피하라고 경고하신다.
이 세상의 모든 죄인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피할 곳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다.

회개하고 그 피난처에 피하는 자는 살고,
이 경고를 듣지 않는 자는 심판의 길로 간다.
“그러므로 악인들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나에게 “피할 곳”을 알려주시고 그리로 피난하게 하신 주님께 감사!
그리고 이 피난처를 세상에게 권하는 일을 내게 맡기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로우신 마음을
내가 온전히 배우고 순종하기를 간구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