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5:1-9, 울음들)

‘울음’에 관한 언급이 이렇게 많은 곳이 성경에 또 있을까?
이 짧은 본문에 맨 ‘울음’이다.
“울며”, “통곡하는도다”, “애통하여 심히 울며”, “부르짖으며”, “울부짖으니”, “곡성”, “슬피 부르짖음”
이 말들이 반복되고 있다.
이것은 “하룻밤”에 일어난 일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모압에 관한 경고”로 하신 말씀이다.
모압이 “하룻밤에 ··· 망하여 황폐할 것이며”
“하룻밤에 ··· 망하여 황폐할 것이라”

모압은 큰 나라가 아니다.
이 나라가 망하는 것은 “하룻밤”이면 족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 큰 나라에는 오래 걸리고 작은 나라에는 하루면 된다는 뜻은 아니다.
“하룻밤”은 그들 죄악이 얼마나 분명하며 큰지를 보여준다.
심판을 할지, 더 기다려야 할지 망설일 필요가 없다.
모압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함께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동행했던 롯의 자손이다.
롯은 소돔에서 “의인”이었다는 평가도 받지만 사실은 많은 문제가 있었다.
특히 딸들을 통해 이어진 계대가 모압과 암몬이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하나님을 믿는 일을 지속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소돔에서 구원된 롯이 가졌던 믿음을 계속 잇지 못했다.
오히려 우상을 섬기고 이스라엘에 시험거리가 되며,
특히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그 멸망을 기뻐한 자들이다.
아, 믿음을 버린 자, 이웃이 고통 가운데 있을 때 돌보지 않고,
심지어 그것을 좋아하는 자의 심판이 “하룻밤”에 일어난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오늘 본문에서 그 심판의 내용이 무엇인지
─기근과 흉년과 패망과 피난─ 언급되지만,
이보다 이들이 그 심판으로 어떤 상태에 이르는지를 아주 자세히 반복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울음’이다!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자, 기근과 흉년과 패망을 당하고 피난하는 자가
어찌 웃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슬프며, 애통하고, 통곡한다.
두렵고, 무섭고, 공포에 절어 눈물바다가 된다.
이렇게 해도 울고 저렇게 해도 울고 여기서도 통곡하며 저기서도 통곡한다.
아이도 어른도 부르짖으며, 황폐해 버린 땅에서도 도망을 가면서도 울부짖는다.
아, 이 자체가 벌이요 심판이다.
슬픔과 울음은 심판의 결과일 뿐 아니라 심판 자체다.
울음은 “그들의 혼이 속에서 떠는” 일이다.

그런데 이 본문에 모압 백성이 아닌 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들린다.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는도다”
이것이 이사야의 말인지, 하나님의 말씀인지 불분명하다.
왜냐하면 “내가”라는 말이 한 번 더 나오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가 디몬에 재앙을 더 내리되”라고 말씀하실 때이므로,
본문에서 두 번의 “내”가 이사야와 하나님으로 구분되는지,
하나님만을 의미하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이사야와 하나님의 마음이 동일하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모압의 심판을 슬퍼하는 것도
─“내가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는도다”(=“가련한 모압아, 너를 보니, 나의 마음까지 아프구나.”)─
그리고 모압에 더 재앙을 내리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이사야도 당연히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갖는다.

즉 성도는 하나님의 심판을 애통해하며 또한 하나님의 심판의 주권을 찬양한다.
이것은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옆에서
“헐어버리라 헐어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버리라”고 바벨론을 부추겼던 에돔 자손과 얼마나 다른가!
에돔, 모압, 암몬,
혈통은 이스라엘과 동일하면서 결국 하나님을 믿는 데서 떠난 이 민족들은
모두 이스라엘이 고통을 겪을 때 기뻐하며 이익을 보기를 원했다.
그러나 성도는 악인들의 고통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을 아픈 마음으로 애통해 한다.
지금의 전 지구적인 전염병의 위기에서 성도는 성도의 고통만 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 또는 잘못된 믿음을 가진 이단이라 해도─
모든 이의 고통을 애통하는 마음으로 공감해야 한다.
성도는 세상을 위해 중보하는 자다.
나는 세상을 위해 울어야 한다.

물론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나 항변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의지하는 자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주권과 구원하시는 주권을 찬양한다.
성도는 심판하는 자가 아니라 공의롭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자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