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4:24-32,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

아마도 그저께와 어제 본문에서 선포된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로부터 “바벨론에 대하여 받은 경고”는
그 내용이 매우 길고 자세하고 구체적이어도 당시에 이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실감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에게 바벨론은 중요하지 않았고 안중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벨론은 당시에 유다를 위협하는 강대국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더 실제적인 문제는 앗수르였다.
그러나 앗수르가 지금 북이스라엘을 무너뜨리고 유다까지 쳐들어올지라도 그들에게는 한계가 있다.
더 이상은 하지 못할 것이다.
나중에 바벨론이 앗수르를 정복하고 유다를 멸망시킬 것이므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더 중요하고 문제가 되는 것은 바벨론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실감이 나지 않아도 이 말씀을 잘 듣고 마음에 새긴 자라면
자기 시대에 이 역사적 현상을 보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주신 경고이므로 분명히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자녀들과 후손이 계속 이 말씀을 믿고 전수하도록 준비시킬 것이다.
바로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지금 말씀하시는 것이다.

특히 “남은 자”에 대해 계속 강조하시지 않는가.
나는 그 “남은 자”에 속하지 못해도 그 “남은 자”를 위해 준비하는 자가 될 수 있다.
나는 앗수르나 바벨론의 침입을 당하고 그 와중에 죽거나 포로로 끌려가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 경고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한다 해도
이 역사가 나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후대에 분명히 “남은 자”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중요하다.
그 믿음을 갖는 자, 견지하는 자, 그것을 후대에 계속 말하고 가르치고 지키게 하는 자가 바로 “남은 자”다.
마지막에 최종적으로 남아 있는 자만 “남은 자”가 아니라
그들이 남을 수 있도록 믿음을 지키고 전수한 자는 모두 “남은 자”다.
그들은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요, 바로 그들이 “남은 자”다.

하나님은 한참 뒤에 이루어질 바벨론에 대한 경고를 분명히 믿을 수 있도록
지금 당장 이루어질 일들을 예고하신다.
그 강대한 앗수르가 유다를 치러 왔다가 물러날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셨기 때문이요,
그렇게 “정한 경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하나님께서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
그리고 하나님께는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 있다.
하나님은 “열방을 향하여 편 손”으로 세상을 다스리신다, 경영하신다!

그 경영은 앗수르를 “파하며” “짓밟으”며 블레셋을 “소멸되”게 하신다.
이들에게도 “남은 자”가 있을 것인데 그들은 “살륙을 당하”는 것으로 끝난다.
즉 그들에게는 “남은 자”가 없다.
역사의 끝이 오기 전에 그들은 심판되고 소멸되고 사라진다.
진실로 “남은 자”는 하나님의 백성뿐이다.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백성도 죄악으로 인해 징계를 받으며 앗수르의 “멍에” 아래 있게 될 것이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이 끝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끝내 지킬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은 영원하신, 전능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므로 그 믿음 자체가 영원하다.
그 믿음을 지키는 자는 영원히 지킨다.
믿음 있는 자는 끝내 “남은 자”가 된다.
믿는 자만 남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피난처를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시온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 약속을 바벨론과 앗수르와 블레셋에게는 주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주신 약속이다.
그들이 “곤고한” 상황에 처할 것이지만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피난”할 것이다.
피난할 곳이 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피할 곳이 있는 자다.

앞의 말을 반복하여,
지금 앗수르나 블레셋에게 곤고함을 당하다가 숨을 거두어도,
더 나중에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거기서 포로 생활로 고난을 당해도,
하나님께 믿음을 지키는 자는 “그 안에서 피난”하는 자다!
마지막에 포로에서 귀환하는 자만 “피난”한 자가 아니며 “남은 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 “남은 자”들을 기른, 즉 그들에게 믿음을 계속 전수한 그 이전의 모든 세대가
다 하나님께 “피난”한 자요, 하나님께서 남기신 “남은 자”다.

이 믿음으로 나는 오늘을 산다.
오늘날 기독교의 약화에 관계없이, 아니 이렇게 된 원인인 나의 죄를 참으로 애통하고 회개하면서,
나는 끝내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께 피난하며
나의 자녀에게, 그 후대에게 내가 살아있는 동안 믿음을 전하고 굳세게 하는 일을 신실하게 하는 일,
그것이 나를 “남은 자”요 “그 안에 피난”하는 자로 만든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역사를 경영하시며,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을 믿는 자에게 마땅한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