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2:1-6, 남은 자들의 감사와 찬송과 사명)

드디어 “그 날”이 온다.
오고야 만다.
“그 날”은 무슨 날인가?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날이요,
“만민”과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는 날이다.
그리고 그 날은 모든 피조물이 탄식을 그치고
죽음과 투쟁의 본성에서 풀려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세계가 완전히 회복되는 날로 연결될 것이다.

이 날은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에도 ─앗수르의 침공이 그침으로─ 임할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우리에게도 임하며,
모든 성도와 피조물에게 앞으로 영원히 임할 날이다.
어느 시대나 이 날은 “구원”의 날이다.
그때 “남은 자”들이 돌아온다.
그 구원은 곧 “주께서 전에는 노하셨”던 것을 전제한다.
그러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다.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신다.
모세는 120세를 살면서, 애굽에서와 광야에서의 많은 고난을 기억하면서 이렇게 노래했다.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시편 90:15)
나의 패역한 죄악,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판단에 지당하게 벌을 받아야 하는 그 죄로 인해
주의 “노”와 “분내심”과 “분노”와 “노여움”과 “진노”가 있었지만,
그러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다!
이것이 “그 날”이다.
곧 “구원”의 날이다.

“그 날”에 성도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남은 자”로서
“감사”하며 “기쁨”으로 “노래”하며 “찬송”하며, 그리고 “선포”한다.
“남은 자”는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 하나님을 진실하게 의지한 자다.
그것이 나의 의지로 가능했겠는가?
내가 그럴 힘이 있었겠는가?
모든 “남은 자”, 곧 끝까지 믿음을 지킨 모든 성도는 다 하나님께서 ‘남기신 자’다.
하나님께서 남기지 않으시면 누가 남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감사와 기쁨과 노래와 찬송과 선포가 이어진다.
그것은 내가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해주셨다.
그러므로 나는 성취의 보람과 결국 해냈다는 자부심으로 기뻐하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일이므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고 노래하고 찬송하며,
하나님을 자랑한다.

아마도 감사와 기쁨과 노래와 찬송은 아주 자연스러울 것이다.
이것도 못하는 배은망덕함이 “남은 자”들에게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선포”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동으로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때 “선포”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여 그 이름이 높다” 하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 온 세상의 피조물들까지 다 회복된 뒤에는 분명 모든 성도가 이 일을 다 ‘잘’ 할 것이다.
구원받은 남은 자들이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며 하나님을 높일 것이다.
초대교회의 성도들도 그 일을 아주 ‘잘’ 했다.
그들은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주신 명령이요 약속대로
세상 끝까지 다니면서 부활하신 예수를 증언했다.
그럴 수 있도록 주께서 약속하신 대로 권능을 주셨다.
그러나 오늘날 나는 그 일을 가장 못하고 있다.
누구도 성령에 의하지 않고는 예수를 주라 하지 못하므로
예수를 믿는 성도는 모두 성령을 받았고 성령께서 성도들을 통해 권능을 행하신다.
그런데도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믿음이 적어 불순종하는 것이다.
아, 내가 그렇다.
그것을 사명으로 알면서도 그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얼마나 어리석고 부끄러운 일인가.
이것이 나의 아주 중요한 기도제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