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7:10-25, 징조를 주실 것이요)

북이스라엘과 아람이 동맹하여 유다를 침공하고자 할 때에
먼저 그 나라 왕들의 도발적인 위협이 있었다.
그것은 심리전술적인 “악한 꾀”였다.
그러나 유다의 아하스 왕에게는 이와는 전적으로 다른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
두 말은 상반되었다.
하나는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 쓰러뜨리고 ··· 무너뜨리”리라!
다른 하나는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하나는 유다의 패망을, 다른 하나는 유다의 승리를 말하는 점에서의 차이가 아니라,
누가 말하는 가에 그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권능이 있다.
적국의 왕들이 하는 말은 그저 그들의 바람이요 전술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요 실행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강조하셨다.
“굳게 믿지 아니하면 ··· 굳게 서지 못하리라”

바로 이 말씀 뒤에 하나님께서 아하스에게 “징조”에 대해 요구하셨다.
하나님께서 “한 징조”를 보여주실 것이요, 그것을 통해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을 확실히 알 것이다.
그러나 아하스는 그것을 거부했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가 그 이유였다.
이 말만 보면 전적으로 옳다.
인간이 어찌 하나님을 시험할 수 있는가?
사람이 시험관이고 하나님이 수험생이 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그 반대가 옳다.
그러나 이 경우는 다르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굳은 믿음을 강화하시기 위해 아하스에게 주시는 기회였다.
하나님께서 먼저 “한 징조”를 보여주시겠다고 했다.
그러면 하나님께 순종하면 된다.
만일 하나님께서 확실한 약속을 주셨는데도 그것이 미덥지 않아서 징조를 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직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먼저 보여주시겠다고 하는 것은 순종하면 된다.
사실 아하스는 이미 앗수르에게 원군을 요청했다.
아하스의 생각에 북이스라엘과 아람 두 나라를 강대국 앗수르가 충분히 무찔러 줄 것이었고,
굳이 하나님께서 나서지 않으셔도 될 일이었고,
분명 앗수르 왕보다 하나님은 불편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징조”를 말씀하신다.
그런데 이 징조는 무엇의 징조인가?
당연히 두 나라의 동맹을 이기게 하신다는 징조다.
이 징조를 보면 이 일이 될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만을 말씀하시지 않는다.
이 징조는 두 나라에 대한 승리뿐 아니라 다른 것의 징조도 의미했다.
아하스가 끝까지 의지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앗수르에 대한 징조였다.
앗수르가 유다를 침범할 것이다.
유다가 고통을 당하고 많은 수가 죽고 땅이 황폐해 질 것이다.
강대국의 의지는 강대국에 의한 정복으로 귀결될 것이다.
아, 먼저 “징조”를 통해 유다를 구원하실 것을 말씀하시고자 했던 하나님은
오히려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는 한 문장으로만 구원을 약속하시고,
그보다 열 배는 더 길 분량의 말씀으로 유다가 앗수르에게 당할 고통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 “징조”는 이제 구원의 징조이면서 동시에 심판의 징조가 된다!
왜 그러한가?
하나님을 굳게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굳게 믿지 아니함으로 굳게 서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을 굳게 믿지 못함으로 앗수르의 침공 앞에 굳게 서지 못한다.
하나님을 굳게 믿는 믿음은 앗수르에 대한 의지를 버리고 하나님만 순종하는 것이었다.
아하스는 이 일에, 가장 중요한 일에 실패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징조는
결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에 대한 징조가 된다.
그러나 이 징조도 마찬가지로 구원과 심판의 징조가 된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으면 구원이요 믿지 않으면 심판이기 때문이다.
예수를 굳게 믿는 자만 심판 앞에 굳게 설 수 있다.
예수를 굳게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굳게 견디지 못한다.
심판 당한다!

하나님의 징조는 단지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 것이라는 이정표, 또는 시간표만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진실로 바라는 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행하실 것인가를 보여주는 징조다.
여기에 굳게 믿는 믿음, 곧 순종이 절대적으로 전제된다.
징조는 우리로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감화다.
이 징조를 이미 충분히 본 나는 당연히 순종하는 자,
굳게 믿는 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