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7:1-9, 하나님을 굳게 믿지 아니하면)

웃시야, 요담 왕은 열왕기하와 역대하에서 모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고 평가된다.
이에 반해 아하스 왕은 그 반대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지 아니”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이 아니었다.
아하스 왕이 북이스라엘과 아람 연합군의 침공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유다를 보호해주시고 이기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듣고도
그는 앗수르에게 원군을 요청함으로 스스로 불순종의 길로 간 것이었다.

아하스는 심지가 굳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북이스라엘과 아람의 동맹 소식을 듣고 놀라 떨었다.
왕과 백성이 똑같이 그러했다.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왕이 흔들리니 백성들이 흔들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어 아하스에게 이르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그가 얼마나 요동하며 안절부절 어쩔 줄 몰랐는지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도 분명했다.
두 나라가 동맹한다 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다!
불에 타버린 부지깽이, 그것은 무기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이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는 말을 귀담아 듣지 말라.
이들의 계획이 있었고 그것은 아하스를 몰아내고 꼭두각시 왕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아하스의 귀에 들어가게 하는 심리전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전략에 조금도 흔들리지 말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고 선언하시기 때문이다.
즉 아하스의 귀에 들리는 두 말이 있다.
하나는 북이스라엘과 아람 동맹의 위협,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약속.
이 둘 가운데 어느 것을 들어야겠는가?
이것은 얼마나 쉬운 문제인가?
만일 하나님이 절망을 선포하시고 세상이 희망을 주입한다면
혹시 하나님보다 세상에 귀 기울이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절망보다 희망이 더 듣기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이 절망을 말하고 하나님께서 희망을 약속하신다면?
사실 문제는 절망이냐 희망이냐가 아니라 누가 말하고 있는가에 있지 않는가!
더구나 하나님께서 보호와 승리를 약속하신다면 이것은 어려운 문제가 전혀 아니다.

그러나 순종과 불순종의 여지는 여전히 남아있다.
하나님은 북이스라엘과 아람의 머리가 누구인지, 사실은 누구에 불과한지를 밝히신다.
그것은 유다의 머리가 누구인지─누구신지─를 강조하시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오히려 두 동맹의 머리에 대해서만 말씀하심으로 당연한, 아주 상식적인 결론을 도출하게 하신다.
유다의 머리는 누구인가?
바로 지금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북이스라엘의 머리는 베가요, 아람의 머리는 르신이다.
이들은 그들 아버지의 아들들이다.
기껏해야 한 나라의 권력의 경쟁에서 승리한 자들에 불과하다.
그러나 유다의 머리는 누구인가?
웃시야이 손자,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아니다.
조상으로 올라가 다윗을 끌어올 필요도 없다.
모세든 아브라함이든 그들 모두 사람에 불과하다.
아니다.
유다의 머리는 사람이 아니다.
유다의 머리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지금 전쟁의 상대는 사람과 하나님이다.
아니 전쟁이 문제가 아니라 누가 말하는가의 문제다.
사람의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인가?
이사야 선지자는 문제를 아주 쉽게 정리한 것이다.
아하스와 그의 백성이 지금 누구 말을 들어야 하는가?
유다와 예루살렘이 지금 누구와 누구의 전쟁을 보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이들에게 두렵고 떨리는 일인가?
아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절망적인 멸망을, 심판을 선포하시면
그것은 정말로 두렵고 떨리고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릴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호와 승리를 약속하시는데도 사람의 말에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이사야 선지자의 말은 이렇게 귀결된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즉 굳게 믿으면 굳게 서리라.
아마도 이 말은 세상 어디서나 통용될 신념이요 전략이다.
누구든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굳게 헤쳐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선지자의 말은 속담과 격언과 듣기 좋은 심리요법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는 “굳게”에 강조할 것이다.
뭘 믿든 ‘굳은’ 의지가 성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세상은 외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에 더 중점이 있다.
하나님 말씀을 믿어야 설 수 있다.
‘뭘 믿든’이 아니다.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믿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아하스(우리) 앞에 있는 것은 사람의 말과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믿는 믿음은 반드시 ‘굳은’ 믿음을 전제한다.
이것도 믿고 저것도 믿어보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은 반드시 “굳게”, 즉 하나님만 믿는 것이어야 한다.
대충, 이것저것, 밑져야 본전, 이런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다.
굳은, 확고한 믿음이 곧 순종이다.

아하스는 하나님을 굳게 믿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굳게 서지 못한다.
그가 의지한 것은 앗수르의 병력이었다.
그것은 불순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