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6:1-13, 탄식에서 사명으로)

이사야는 이 책의 첫 구절에서
웃시야부터 히스기야까지, 즉 네 왕의 시대에 그가 선지자로 활동했음을 밝혔다.
그것은 그가 본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는 것이었다.
오늘 본문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로 시작한다.
웃시야는 교만함으로 나병에 걸려 아들 요담에게 통치권을 넘겨주고 별궁으로 물러나야 했지만
유다 왕들 가운데 두 번째로 재위 기간이 길었고(52년),
그 기간은 꽤 긴 국가적 번영의 시기였다.

웃시야 왕의 죽음은 그 번영의 종식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 진실로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게 재출발해야 할 기회이기도 했다.
그때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셨다.
연기가 충만한 성전 가운데 높이 들린 보좌 위에 하나님께서 앉아계셨고
천사들이 문지방을 요동케 하는 소리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있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다”
이스라엘의 정치적·경제적 부침이나 영적인 위기와 달리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은 온 세상에 충만했다.
그것을 선지자는 보았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자신의 “부정”함을 보았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순간은 곧 나의 죄를 보는 순간이다!
이것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부정함의 결과가 무엇인지도 자동적으로 인식되고 고백된다.
그것은 “화”요 “망”함이다!
부정한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결과는 멸망이다.
이 둘은 어울릴 수 없다.
공존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해 그를 정결케 하심으로
그는 “악에서 제하여졌고” “죄가 사하여졌”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은 죄인을 멸하시며,
그러나 또한 악과 죄를 제하고 사하신다!
이사야의 고백과 회개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그를 움직이셨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교만함으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자신이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다고 고백했다.
세상의 왕들은 ─유다왕국도 마찬가지로─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지배자였다.
특히 이사야의 책은 나라의 지배층에 대한 경고가 얼마나 신랄한가!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뵈올 때 진정으로 하나님이 “왕”이심을 고백한다.
세상의 왕들이 숱하게 교체되고 체제가 바뀌어도 모두 “왕”이신 하나님 아래에 있는 자들이다.
하나님만이 주권자시요 통치자시다.
왕이신 하나님!
그 앞에서, 그 아래에서 나는 포학함이나 불의나 또는 자기 정파(패거리)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왕들의 위선을 염려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왕이시다!
모든 것이 그 아래에 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
그러나 또한 나는 왕이신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그 아래에서 참으로 두렵다.
나는 세상 왕들의 죄악에 도덕적으로 판단하며 분개한다.
나는 그 거대한 권력을 비웃으며 경멸하고 정죄한다.
그러나 거룩하신 왕 하나님 앞에서 나는 죄인이 된다.
나는 도덕적 승자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왕이심으로써 세상 왕이든, 나 같은 민초든 모두 제자리를 찾는다.
모두의 제자리는 하나님 앞의 죄인석이다!
그것은 사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렇지 않다면 나는 왕들과 똑같이 교만한 판단자 노릇을 계속할 것 아닌가.

왕이신 하나님께서 죄인인 이사야의 죄와 악을 사하고 제하시고 그를 사명자로 부르신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죄를 용서해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데 하나님의 사명까지 맡기신다.
그것도 강압적 명령이 아니라 자발적인 순종을 허락하시면서.
하나님께서 먼저 필요를 말씀하셨고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이사야가 자원하였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탄식’에서 ‘사명’으로의 반전이다.
탄식하는 자, 애통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사명자로 부르신다.

나의 탄식과 애통이 참으로 부족하다.
내가 하나님의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닌가?
내가 부정한 자요, 이 사회가 부정한 자들의 사회임을 내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탄식하고 애통하는 것이 부족하다.
나 자신에게만 침잠하여 내 문제와 형통에만 골몰하든지,
사회의 문제만을 쑤셔대며 의인인 체 하는 것은 진정한 탄식과 애통이 아니다.

이사야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은 “이 백성에게 이르”라는 것이다.
어떤 행위와 사업과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신약의 성도들에게 주께서 주신 사명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사명은 곧 나의 사명이다.
그런데도 나는 얼마나 이 일을 게을리 하고, 아예 못하고 있지 않는가!
내가 너무 잠잠하고 있다.
나의 부정함과 백성의 부정함을 다 보지 못하기 때문은 아닌가.
사실은 그 두 가지를 다 알고도 이러고 있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