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6:13-24, 믿음과 사랑으로)

고린도전서의 마지막 부분이다.
바울 사도가 편지를 맺는다.
여기에 마지막 권면들이 있다.
오늘 본문에는 “~라”(대체로 “~하라”)는 명령어가 많이 나온다.
“남자답게 강건하라”,
사실은 그 앞에 “깨어 믿음에 굳게 서”라.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한 마디로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사랑하라’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시대나 동일하지만 무엇보다 믿음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되,
특히 고난의 시기에 그러하다.
초대교회의 때는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속한다.
그러나 성도들이 믿음에 굳게 섰기 때문에 그 다음 세대가 더 든든하고 안전한 상황에서 예수 믿는 삶을 살 수 있었다.
지금도 그러한 시기에 속한다.
평화와 경제의 면에서는 어는 때보다 더 나아졌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의 힘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때 기독교의 힘을 키우는 집단적 세력화가 아니라
오직 “깨어 믿음에 굳게 서”는 것이 요구된다.
지금 이 시대는 믿음이 흔들리기 얼마나 쉬운 때인가.
이것은 특히 어린 세대를 볼 때 더욱 그러하다.
이전 세대보다 다음 세대는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기가 더욱더 어렵다.
사회가 믿음에 더욱 위협적이며 부모들은 자녀들을 “강건”한 믿음으로 키우지 못했다.
거의 전적으로 좋은 학교에 가고 돈을 더 많이 버는 사람이 되는 길로 가도록
무제한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부모의 일차적인 책임으로 여기는 풍조에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지혜롭고 담대하게 거스르지 못했다.
교회가 부모들과 자녀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는 신앙생활은
누구보다도 실제로 그 ‘끝’이 얼마 남지 않은 분들에게 더욱 중요하다.
바로 노년들이다.
건강과 경제적인 사정이 가장 힘들어지는 노후의 때에
평생 지켜왔던 믿음을 끝까지 기쁘게 견지하도록 교회가 전적으로 도와야 한다.
교회를 교인 수나 미래의 크기로만 계산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마지막에 신앙이 약해지지 않도록 노년들을 교회학교 학생들 이상으로 더욱 잘 돌봐야 한다.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노년의 때를 무엇으로 감당할 것인가?
모든 면에서 결핍이 더욱 심각해질 때에 내가 무엇으로 그것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믿음 아닌가!
평생 믿음으로 살아온 신념 아닌가.
저의 믿음을 “굳게” 하옵소서.

“사랑”은 믿음과 동일하게 어느 때나 어느 상황에서나 성도의 본질이다.
믿음을 잃으면서 사랑을 유지하거나 사랑을 포기하고 믿음을 지킬 수는 없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를 사랑하는 것이요,
또한 예수를 사랑하는 것이 예수를 믿는 것이다.
예수를 사랑하는 것 안에는 성도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히 포함된다.
오늘 본문에 “하라”는 명령에 해당하지 않는, 이미 시행된 선례가 있다.
바울이 언급한 몇몇 형제들이 보인 삶은 ‘성도를 섬기는’ 모범이었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마음을 시원하게’ ─“상쾌하게”, “생기를 불어넣어”─ 하는 것이었다.
사실은 이것이 모두 고린도 교인들이 해야 할 “사랑”이다.
사랑은 성도를 섬기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며,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그냥 “사랑”이 아니라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했다.
‘어떤 것은’이 아니라 “모든 일을”이다.
나는 “사랑” 자체가 참으로 부담스러운 명령인데 그 잘하지 못하는 것을 “모든 일”에서 해야 한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더욱 하나님의 도우심이 간절하다.
그러면 나는 과연 그것을 하나님께 참으로 절실하게 아뢰고 있는가?
나는 내게 가장 부족한 이것, 가장 중요한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냥 나의 현재 ‘성품’에 맡기고 방치하고 있을 뿐 아닌가?
나의 변화를 위해 내가 얼마나 마음을 모으고 있는가?
이것이 문제다.
내가 나를 어떻게 변화시키겠는가.
오직 성령께서 감화하시는 것에 순종함으로써만 가능한데,
이 순종의 마음을 열망하고, 순종할 힘을 간구해야 한다.

6월 30일.
이 한 달 동안 고린도전서를 통해 나와 교회의 진면목을 대면하고
애통하며 무엇을 기도할지 알게 되어 참으로 감사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