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6:1-12, 광대하고 유효한 열린 문, 대적하는 다수)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마지막 장.
그의 일정과 사역과 관련하여 몇 가지를 당부한다.
그는 3차 전도여행 중에 에베소에서 3년을 머물러 사역하면서 고린도전서를 쓰고 있다.
그는 고린도에 들렀다가 예루살렘으로 갈 것이다.
당시에 예루살렘은 기근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곳곳의 교회들이 이를 위해 구제헌금을 모으고 있었다.
바울은 그 연보를 취하여 예루살렘의 성도들에게 전할 것이다.

구약이나 초대교회의 시대나 모두 농업이 경제의 근간이므로
헌금은 농산물의 수확시기와 일치한다.
그러나 고린도는 상업이 번성한 교역도시였고
이들의 소득 주기는 농업적 반년 또는 일 년의 주기가 아니었으므로
매주 교회에 모일 때마다 헌금하는 것이 지당했다.
바울은 “매주 첫날에(일요일에) ···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연보할 것을 권했다.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이라는 특정한 목적은
돈의 총합보다 마음의 지속적인 연합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현재 전 지구적으로 닥친 이 위기 가운데
‘예루살렘 교회’와 같은 어려운 상황에 있는 많은 사역자들, 사역기관이 있다.
최근에 해외 선교사들이 얼마나 취약한 가운데 있는지
그들의 사정을 자세히 알아보고 실제적인 일─기도와 후원─을 할 것을 권하는 말을 들었다.
이 일에 대해 자료를 살펴보아야겠다.
교회들이 이 시기에 대부분 재정적으로 위축될 것이지만
고린도교회의 모범을 배운다면 선교사들을 위한 “연보”가 더욱 절실함을 깨닫는다.

바울 사도의 일정은 에베소에서 마게도냐를 두루 거치고
고린도 교회에 이른 다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전체 여정을 그는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다고 요약한다.
아마도 당시의 사도들이, 모든 복음의 사역자들이 어디를 가나 만났던 현실일 것이다.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되는 일을 약속과 사명으로 받은 모든 성도에게
그 길은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린 노정이다.
“땅 끝까지”는 어느 시대, 어느 곳의 사람에게도 멀리 있다.
모두에게 그 길로 향하는 문이 열려있다.
그 문은 “광대하고 유효”하다.
나는 문이 닫혀 있다고, 너무 좁고 무효하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가령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일은 사회적으로 아주 천박하게 여겨지고 있고
아무도 환대하지 않는다.
더구나 전염병의 위기가 전도를 위한 만남을 아예 차단한다.
사람들이 생업을 위해서, 심지어는 유흥을 위해서는 병을 옮길 밀접함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아무리 안전거리를 둔다고 해도 전도를 환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때 나는, 교회는 전도를 유보하며 침묵해도 되는 것인가.
나는 내 문자연락망의 주소에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안다.
내가 진실로 그들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권능을 믿는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와 같이 복음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아, 그러나 나는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다.
내게 그 문은 “광대하고 유효”하게 열려있는데
나는 한 발자국도 그리로 가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것을 깨닫고 과연 내가 이때에 어떻게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바울에게 그 길은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다.
아마 앞의 조건보다 나는 분명히 뒤의 상황에 종속될 것이다.
“대적하는 자가 많”다.
이것은 내가 나설 상황이 아닌 정당한 이유로 간주될 것이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린 조건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미 분명히 보았으므로,
그 뒤의 상황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적하는 자가 많”다.
그럼 대적을 당하면 된다.
박해를 받으며 그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린 길을 가면 된다.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려 있다.
그러나 가시밭길이다.
나는 가시를 보고 안 가지만
사도는 그 문이 광대하고 유효하게 열려있으므로 담대히 나아간다.
아, 내가 이 모범을 따라야 하는데.
내가 참으로 너무 연약하다.
믿음이 너무 부족하다.
지금의 전염병 위기에 내가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
내게는 “대적하는 자가 많”지 않다.
내 안에 나를 불순종하게 하는 작은 믿음이 문제다.
주님,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