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12-19,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

사람들은 대체로 감각적으로 인지하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라고 단정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눈으로 보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생각으로 지어낸 것으로 분류한다.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흔적이 있느냐로 사실의 여부의 기준을 삼고
이에 맞는 것은 객관적인 것으로, 그렇지 않은 것은 주관적인 것으로 가른다.

바울도 일단 이 기준을 근거로 삼는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봤다고 증언한다.
만일 그가 본 예수를 환상으로 몰아 부친다면,
십자가에서 죽은 뒤 며칠 만에 직접 예수를 만나본 더 많은 제자들의 증언이 예수의 부활이 사실임을 입증한다.
예수는 극한의 절망 가운데 있던 제자들이 갑자기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들이 실제로 부활한 예수를 눈으로, 손으로 확인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결코 그런 이야기를 지어낼 일말의 희망도 전혀 있지 않았던 자들이다.
그들에게는 부활에 대한 일체의 상상력이 없었다.
단지 그들은 눈으로 보았을 뿐이다.
그리하여 이 사실의 증언자가 되었다.

이들은 모두 예수 부활의 사실을 전한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 다시 살아나셨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어도 좋으니 의미만 고상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제자들은 그런 일을 볼 수 없고 입증할 수 없으니 사실이 아닐 것이 분명하나
고상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 그 의미로 좋아할 수 있지 않는가 하고 설득하지 않았다.
아! 오늘날의 많은 신학자들이 부활의 사실을 믿지 않고 의미만 따진다.
아니, 그 좋은 의미들을 지어내고 창안해낸다.

그러나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의미가 아니라 사실에 대면하게 한다.
예수께서 삼일 만에 부활했다고 믿으면 어떤 역경 속에서도 견뎌낼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느냐,
세상이 아무리 악이 지배하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선이 이긴다고 바라는 것이 훨씬 더 삶의 의욕을 주지 않겠느냐,
혹 병에 걸린 자라도 부활과 같은 극단적 희망을 품은 자가 조금이라도 더 일찍 치유되고 더 오래 투병할 수 있지 않겠느냐,
부활의 증인들은 이런 식의 심리적 충격요법을 조금도 쓰지 않았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을 말하고 있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의미를 말하고 있지 않다.
의미는 당연히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은 사실에 의해서만 나온다.
사실이 아니면서 부과된 의미는 거짓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이 실제 벌어진 사실이라는 진실에 대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이 믿음의 근거요 내용이다.

예수가 “다시 살아나신 일”을 증명하기 위해
바울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의 사실성을 강조한다.
그것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흔히 일어나는 사실이므로
예수라는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나신 일”이 뭐 믿을 수 없는 일이겠느냐 하는 논리가 아니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은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일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엘리야가 살린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있고,
예수께서 살리신 과부의 아들과 나사로도 있다.
그러므로 예수도 부활할 수 있다.
이런 의미가 아니다.
의학적으로 사망으로 확정된 뒤에 다시 소생하는 경우는 지금도 가끔 벌어진다.
예수께서 그런 식으로 기절했다가 정신을 차리신 것인가?
아니다.
예수의 부활은 역사적으로 전혀 없던 일이 벌어진 기적이다.
그것은 결국에는 늙어, 병들어 다시 죽은 사르밧 과부의 아들과 나사로와 다른 부활이었다.
죽음이 유보된 사건이 아니라 죽음을 이긴 기적이었다.
예수는 부활하심으로 영원히 살아계시고, 죽음을 이기는 영원한 생명을 보여주셨다.
그것은 역경 뒤에 좋아지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먼저 일어나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나중에 일어날 것이다.
이 둘은 죽음을 이긴 영원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본질로 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은 모든 성도가 “다시 살아나는 일”의 근거다.
예수의 부활이 성도의 부활을 일어나게 할 것이다.
예수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을 위한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죽으셨고 구원의 영원성을 확증하기 위해 부활하셨다.
이것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예수께서 죽으실 일도 다시 살아나실 일도 없었다.
예수의 부활을 보면 성도가 영원한 생명으로 살 것을 미리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말은
예수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의 불가분의 사실 관계를 강조한 것이다.
성도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께서 굳이 부활하실 일이 없었다!
이것은 예수의 부활이 사실인 것과 똑같이 성도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선언이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면 ─단지 고안해낸 의미이기만 하면─
그것은 “거짓”이요 “헛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