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1-11, 전해지는 복음, 헛되지 않은 은혜)

이 편지의 마지막 주제는 “부활”에 이른다.
사실 그것은 가장 중요한 사안이다.
그것이 복음의 진수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복음에 대해 말할 때 거듭 “받은 것”과 “전한” 것을 강조한다.
복음은 바울이 지어낸 이야기나 그의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다.
복음의 기원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바로 “성경”이다.
성경에서 미리 말한 것이 곧 복음이다.
바울이 복음을 받았다고 할 때 그것이 진실로 복음인지 아닌지는 성경에 근거한 여부로 판명된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전하는─ 복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그것이 이미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예수의 부활이 복음인 이유는 그것이 희한한 사건, 희대의 기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만일 그것이 “성경대로” 된 일이 아니면 그것은 어느 종교창시자의 신화에 불과하다.
그런 종교와 신화는 쌓이고 쌓여 있다.
예수의 부활이 그에 속한다면 복음이 아니다.
부활이 복음인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이미 말한 것이 이루어지기만 하면 복음이 아니라,
그것이 죄인을 구원하는 참된 의미와 효력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시는 사건,
곧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이미 약속으로 기록되었고,
또한 그것이 죄인을 구원하는 유일하게 효력 있는 사건이다.

만일 어느 신이 하늘을 나는 날개 달린 자가 나타나면 구원자가 온 줄로 알라고 약속했고,
언젠가 그러한 자가 나타났다고 해서 그게 죄인들의 구원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우리는 금방 의심을 품는다.
그러나 또한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고 살아나서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는 부활사건이 일어났다고 해도
그것이 미리 약속된 사실이 아니면 역시 과연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인지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성경에 미리 알려주셨고,
그 일을 통해 죄인이 용서받고 구원받게 되는 완전한 논리, 즉 진리를 명시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대로” 예수께서 그 일을 행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는 복음이다!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을 성경을 통해 받았고, 부활하신 예수를 만남으로써 확증했다.
그리하여 그는 이 복음을 세계 전역에 전하고 있다.
그는 받은 것을 전한다.
그리고 바울에게서 받은 복음을 고린도 교인들이 또 전한다.
바울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 겸손하게 말했는데,
그 이후의 모든 성도가 바울과 똑같이 “맨 나중에” 이 복음을 받았다.
“맨 나중에” 복음을 받은 자는 이제 그것을 전함으로써 또 다른 “맨 나중에” 복음을 받는 이를 탄생시킨다.
모두가 복음을 “맨 나중에” 받는다.
그것은 또 “맨 나중” 사람을 찾는다.
복음은 받고 전해진다.

바울은 분명 더 특이한 것이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던 자였다.
예수께서는 그를 보시자마자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가 예수께 당신이 누구냐고 묻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대답하셨다.
물론 모든 인간이 하나님께 거역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삶을 산다는 점에서 모두 하나님의 원수다.
바울은 그것을 신념적으로, 적극적으로 행하는 자였다.
그의 전력을 볼 때 결코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도가 되었고
그가 받은 “그 은혜가 헛되지 아니”함이 드러났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은 위대한 사역에 달린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은 무엇보다 죄인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나는 것, 그 능력에 달려 있다.
그것은 성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권능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능력이 이제 또 다른 “맨 나중” 사람을 찾음으로 입증된다.
바울이 한 것은 받은 복음을 전한 것이다.
그것으로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지 않게 했다.

내가 복음을 전한 지가 얼마나 되었는가?
전염병 위기로 삶의 반경이 대폭 축소되기 훨씬 전에 내가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소홀히 했었다.
아,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는 자이구나.
역병 확산의 위기가 여전해도 사람들은 생업을 위해 이 사람 저 사람 찾아가 만나는 위험을 무릅쓰며,
심지어는 유흥을 위해서라도 밀폐된 데서 사람과의 접촉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는 바울이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게 되는 이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도 헛되게 하고 있구나.
내가 다시 정신 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