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4:20-40, 분별과 화평의 예배)

고린도교회에서 성령의 은사가 문제가 된 것은 특히 예배와 관련해서였다.
근본적으로 은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유익하게 하려”고 각 사람에게 주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도 사람이 그것을 우열로 구분하고
“성령의 은사”가 심지어는 “분쟁”의 요인으로까지 작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문제의 현장은 교회에서 함께 드리는 예배였다.

어제 본문에 이어 방언과 예언이 공예배에서 갖는 의미가 구분된다고 강조된다.
함께 예배하는 자리에서는 언어적 이해가 전제된다.
그러므로 방언은 개인의 예배에 적용되어야 하고
“알아듣기 쉬운 말”로 하는 예언이 공예배에 적합하다.
방언의 경우는 꼭 통역을 통해 모두 뜻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본문은 뜻의 이해에 더 하여 “품위”와 “질서”를 강조한다.
통역이 동반된 방언이든 일상 언어로 하는 예언이든
일단 이해가 전제되더라도 그것이 무질서한 형태로 진행될 경우 문제가 야기된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여기서 바울 사도는 “무질서”의 문제가 “화평”을 깨는 것임을 강조한다.
“무질서”의 반대는 질서가 아니라 “화평”이다.
왜냐하면 무질서는 곧 불화이기 때문이다.

무질서가 왜 불화인가?
통역을 동반한 방언이든 예언이든 공예배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은사에 따라 하는 것이다.
사람의 힘에 의해서 독점적으로 될 일이 아니다.
예배 중에 여럿이 하나님의 말씀을 나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분별”의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
특히 예언의 경우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자기가 생각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 의해 “분별”되는 ‘점검’의 과정이 중요하다.
무질서는 이러한 과정이 사라져서 한 사람이 독점하거나, 분별의 과정이 보장되지 않거나,
그리하여 목소리 큰 자가 좌지우지 할 수 있고 이에 대해 원망이나 불만이 생길 수 있다.
무질서는 예배 중이라도 ‘불화’를 야기한다.
예배 중의 불화!
이것은 얼마나 모순인가!
그리하여 무질서의 반대는 “화평”이다.
그것은 “품위”와 “질서”로써 실행될 것이지만
형식적으로만 점잖고 순서를 지킨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서로를 존중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대로” 되게 하는 “화평”이 중요하다.

아! 이러한 원리가 오늘날 교회의 예배 자리에 적용될 여지가 과연 있는가?
너무 품위 있고 너무 질서 있는 오늘날의 공예배에!
무질서나 불화가 있을 수 없는!
설교자와 대표 기도자 외에는 일체의 말을
─하나님이 주시는 깨달음이나 질문조차도─ 삼가야 하는 “품위”와 “질서”!
예수님이 말씀을 하시는 동안에도 질문이 있었고 그에 대해 대답하셨다.
초대 교회의 예배는 여러 사람이 “차례를 따라” “품위 있게” “질서 있게”
방언을 하고 통역을 하고, 특히 예언을 했다.
그 예언에 대해 “분별”을 하는 발언이 있었다.
“화평”의 하나님께서 이 예배를 주관하셨다.
성령께서 각 사람의 마음을 원하시는 대로 주관하셨다.
그에 따르지 않을 때 문제가 생기고 불화나 무질서가 생겼다.
그러하다면 오늘날의 인위적인 순서와 행사로서 예배는
성령께서 각 성도를 주관하시는 것을 억제하는 “무질서”일 수 있다.

초대 교회와 같은 이상적인 예배가 정말 오늘날의 교인과 교회에 불가능하다면
예배 시간 이후에 얼마든지 말씀의 나눔이 있어야 한다.
식사 중에, 말씀의 교제 시간에.
그리고 이때 참으로 중요한 것은 “분별”이요 “화평”이다.
예배 시간에는 오로지 조용한 침묵이 예배 후에는 무질서한 봇물로 바뀔 수 있다.
어떤 자리에서든, 어떤 시간에든, 누구와 나누는 대화든 참으로 “분별”과 “화평”이 중요하다.
사실, 그게 어렵다.
미성숙함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자유로운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전염병의 위기 가운데 교회 안에서의 모든 자리는 공예배 외에는 다 폐지되었다.
그나마 교인들이 식사하며, 부서별로 말씀을 나누면서 하던 나눔과 “분별”의 과정이 사라졌다.
역병의 상황이 아주 안전하게 극복될 때까지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가정에서, 혹 조금 더 큰 규모의 몇 가정의 비공식적 교제 자리에서
─아주 안전한 자리에서─
말씀을 나누고 “분별”하고 “화평”을 위해 애쓰고 애통하고 사모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분별”이 없으면 무분별해진다.
그것이 무질서의 지름길이다.
그리고 무질서는 불화로 이끈다.
“분별”이 있어야 “화평”에 이른다.
이것을 사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