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1:1-13,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오니)

백성들이 승리한 왕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
이스라엘의 상황을 생각하면 왕으로서 다윗이 이 시를 썼으니
그는 자신을 생각한 것인가, 다른 왕을 염두에 둔 것인가?

그가 맨 처음에 접한 왕은 사울이다.
골리앗과 대치하였을 때 소년 다윗은 이스라엘이 당연히 이기기를 바랐고
단지 물맷돌로 그 거인 장수를 물리쳐 사울 왕은 승리자가 되었다.
다윗이 그것을 자신의 공으로 돌리지 않았지만
백성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자 사울은 그를 질투했다.
백성들이 사울을 높였음에도 그는 다윗을 질투하고
승리한 왕으로서의 위신에 스스로 흠집을 냈다.
만일 사울이 다윗을 백성 앞에서 진심으로 높였다면 그 자신이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다윗은 백성들에 의해 영광을 받는 승리한 왕의 모습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다.
그러한 왕을 그는 고대하였을 것이다.

그 자신은 아무려면 사울보다 훨씬 백성들과 가까운 지도자였다.
그를 좇아 아둘람 굴에 모여 형성된 공동체는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었다.(사무엘상 22;2)
그 사백 명, 나중에 육백 명이 된 무리와 동고동락을 하면서
그는 백성들과 하나 되는 법을 익혔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이 남자들과 사흘 간 출정을 나간 사이에
아말렉 사람들의 침략을 받아 여인들이 다 포로로 끌려갔을 때
그는 성난 무리에게 돌로 맞아 죽을 뻔하기도 했다.
그 거친 공동체에서 그는 더욱 승리한 왕을 제대로 치하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다.

다윗, 그는 왕이면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자였다.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오니”
이것은 자기 자신의 고백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진정한 왕을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닌가.
예수께서 인용하신 시편 110편에는
다윗과 그가 “주”로 부르는 분과 하나님(여호와)이 등장한다.
다윗, 주, 하나님.
이 셋의 관계를 예수께서 풀어 설명하셨다.
그것은 다윗과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지만 만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벌써부터 알고 있었고 그를 찬양한다.
그리고 성경은 여러 곳에서 다윗의 왕위를 영원히 이어
세계와 우주를 통치하시는 예수님을 예언한다.
그렇다면 다윗은 세상의 주요 왕이신 예수를 기다리고 고대하며 이 시를 썼을 것이다.
다윗은 자기가 높아지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을 것이다.
하물며 하나님 앞에서 그러하랴.
그는 자신이 왕이지만 그는 또한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이다.
그는 백성으로서 승리하신 왕을 높이며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한다.
그는 하나님께 왕이 한 일을 칭송으로 고백한다.
그는 왕이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는지 고한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왕과 함께 하신 하나님, 왕의 승리를 통해 모든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
영광과 존귀와 위엄으로 왕을 높이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것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심으로 죄인의 구원을 이루신,
무덤에서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이기시고 영원한 생명을 성도에게 보장하신,
그리고 약속하신 그대로 마지막 때에 그 선하신 권능으로 마귀를 멸하시고
만왕의 왕으로서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예수께 대한 우리의 고백과 찬양이다.

그리고 이 시의 당연한 적용은
내가 왕이신 예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데 있다.
내가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는 것은
곧 내가 예수의 백성이요 예수를 순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참으로 선하신 왕인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인데,
문제는 내가 얼마나 예수님을 순종하는 그의 백성인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