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8:16-29, 내가 주를 의지하고 달리며)

오늘 본문은 시편 18편의 앞부분인 어제 말씀과는 조금 다른 내용인 듯하다.
사실은 하나의 시에서 그 내용이 발전적으로 전개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어제와 같이 오늘의 부분도 “나”와 “그”(하나님)에 대한 내용이 계속된다.
그러나 어제 말씀이 ‘하나님의 선하신 권능’과 ‘다윗(성도)의 겸손’을 강조했다면,
오늘 내용은 역시 ‘하나님의 선하신 권능’(은혜와 자비)이 반복되지만
다윗(성도)의 “의”가 대두된다.

크게 세 부분(세 날)으로 나누어 묵상하는 이 시의 오늘 본문에서도
다윗이 원수들의 손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임이 찬송된다.
다윗은 “힘”의 비교를 정확히 하고 있다.
다윗이 가장 연약하다.
그를 대적하는 원수들은 그보다 “힘이 세”다.
다윗은 시종 쫓겨 다녔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신 신이시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원수들을 물리치시며 그들을 패망케 하신다.
주님은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며 “교만한 눈은 낮추”신다.
그리하여 힘 센 자들에게서 다윗을 건져내신다.
즉 다윗 ─ 원수들 ─ 하나님 순으로 강하다.
사실은 원수와 하나님 사이에는 비교할 수 없는 간극이 있다.
인간들 사이의 상대적인 비교는 가능하지만 어찌 인간과 하나님을 비교할 수 있으랴.
오직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윗은 구원되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의와 손의 깨끗함과 순종과 완전함과 용맹을 말한다.
이것은 어제 본문의 정신과,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도 강조되는 하나님의 권능과 모순되는가?
아니다.
다윗이 말하는 의는 사실 어제 말씀의 ‘겸손’과 쌍을 이루는 ‘순종’이라 할 수 있다.
다윗은 자신의 의로움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마땅한 공적이 되어 하나님께서 구원으로 갚아주실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온 자로서
의로운 행실과 깨끗한 손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과 하나님 앞에 완전하게 살고자 하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
그는 하나님의 선하신 권능을 의지하여 하나님께서 그에게 원수들을 붙여주실 때
당연히 용맹하게 나아갈 수 있었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만일 그가 “주를 의뢰하고”와 “하나님을 의지하고”라는 말을 여기서 뺐다면
그는 자기 의를 과시하는 것이며 교만에 빠지는 것이다.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윗은 자신의 의를 의뢰하고 용맹을 의지한 것이 아니다.
그 반대다.
그는 하나님을 의뢰하고 의지하였기 때문에 의와 용맹의 순종을 다했다.

성도는 하나님의 선하신 권능 앞에 겸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겸손이 태만은 결코 아니다.
겸손이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것을 사양하며 순종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태만이나 불순종은 겸손이 아니다.
부지런한 순종이 곧 겸손이다.
어쩌면 나를 낮추는 것보다 순종하는 것이 더 어렵고 중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겸손한 것은 불순종으로서 겸손을 이루려는 교만한 모순이다.

참으로 겸손하며, 진실로 부지런히 순종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