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8:1-15, 승리의 날에 나와 그)

이 시는 다윗이 “그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와 사울의 손에서” 건짐을 받고 나서 쓴 시다.
즉 다윗이 쫓겨 다니던 모든 위협에서 벗어나 이스라엘의 왕이 된 뒤의 상황이다.
모든 나라마다 창건과정을 신화화하고
시조, 또는 초대 왕, 이보다 더 위대한 자가 있을 때는 그를 영웅으로 하여
기리고 높이고 전설로 만들어 낸다.
시편 18편은 그와 같은 유의 다윗 신화를 쓴 ‘용비어천가’인가?

아니다.
이 시는 다윗 자신이 지었는데도 자신을 높이지 않는다.
이 시에서 ─오늘 본문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 둘이 있다.
둘 다 거의 모든 문장의 주어로 쓰인다.
바로 “나”와 “그”다.
“나”는 다윗이고, “그”는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다윗의 영웅담이라면 “나”는 한층 높여질 것이요,
“그”는 다윗을 높인 절대적인 권위자다.
이때 “나”는 이중적으로 높여진다.
내가 영웅적으로 적들을 물리쳤고, 그것은 절대자인 “그”의 뜻이다.
영웅들에게 이보다 멋진 이야기가 또 있을까.

그러나 이 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늘 본문에서 첫 두 단락은 “나”에 대해 썼고, 다음 셋째 단락은 “그”에 관한 내용이다.
첫 단락에서 “나”는 사실 무엇을 하는 행위의 주체가 아니다.
내가 행하는 것은 두 가지뿐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내가 그 안에 피할”.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 안에 피한다.
이것은 그의 업적이 아니고 그가 세운 혁혁한 공도 아니다.
칭송의 대상은 하나님뿐이다.
하나님이 ─다윗 자신이 아니라─ 힘이요, 반석이요, 요새시며, 하나님이며, 바위요, 방패요, 구원의 뿔이요 산성이다.
하나님이 다윗을 건지신다.
다윗인 한 일은 그러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피한 것뿐이다.

둘째 단락에서 “나”는 여러 가지의 행위와 관련되는데 그것도 역시 공과 업적과 무관하다.
다윗은 원수들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 있고
불의에 뒤덮여 두려움 속에 있고 환난 중에 있다.
그 모든 위기에 대해 다윗이 한 일은 영웅적인 투쟁과 승리가 아니다.
그는 이 시에서 그가 어떻게 칼을 휘둘렀는지 어떤 작전을 썼는지
그의 지략이 얼마나 뛰어난지 말하지 않는다.
그는 참으로 연약한 자다.
그러나 그가 한 일이 참으로 강한 것인데 바로 하나님께 “아뢰며” “부르짖”은 것이다.
어떤 용사가 싸움에서 살려달라고 외친 것을 자랑하겠는가!
그것은 부끄러운 일 아닌가?
그러나 다윗은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그것이 그가 할 바요, 그것이 가장 의롭고 강한 일임을 그는 안다.
그의 위기는 그 자신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셨다.
그것을 다윗은 고백하며, 그리하여 하나님을 “찬송”한다.

그리고 마지막 단락은 바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에 집중된다.
거기에 위기와 싸움에서 세상 영웅들이 자랑하는 공과 업적들이 나온다.
그러나 그것은 다윗의 행위가 아니라 모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땅의 진동, 산들의 요동, 그의 진노, 하늘로부터의 강림, 하늘을 날고, ···
그리고 우박과 숯불과 우렛소리와 화살과 번개로 원수들을 섬멸하셨다.

다윗은 이 시에서 왕으로서 자신의 위엄을 조금도 자랑하지 않는다.
그가 한 일은 없다.
그는 오로지 위기에 처하여 약자로 있을 뿐이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찬양한다.
그것만 기록한다.
그러나 이보다 다윗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그 일이 너무도 위대하여서 다윗은 자신에 대해 쓸 무엇이 없다.
그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자세히 언급한다.
그것을 하는 것이 그의 “찬송”이다.

이 시에서 나타난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권능이며 다윗의 겸손함이다.
이것이 압축된 성경의 역사요, 인류의 역사다.
그리고 나의 일상이어야 한다.
내가 높아지려는, 인정받으려는, 주인공이 되려는 그 어떤 의도도 이 시에 나타나지 않는다.
성도가 그러해야 함을 다윗이 모범을 보인다.
내가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고, 지지 않으려고 버둥대고,
노골적으로 또는 은연중에 공을 나에게 돌리려 하고,
불리한 것에 대해서는 변명으로 방어하는 수작들,
그것을 내가 안다.

이 시가 ‘나의 힘인 나여 내가 나를 사랑하나니 나는 나의 반석이요 나의 요새요 ···’,
더욱 심각하게는 나를 ‘너희의 힘, 너희의 반석, 너희의 요새’라고 말하고 있지 않음이
너무도 분명하지 않은가!
모든 것이 “나”와 “그”, 즉 나와 하나님을 누구로 고백하느냐에 달렸다!
그것을 결코 바꾸지 않기를 바라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