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6:1-11, 충만한 기쁨, 영원한 즐거움)

기쁨과 즐거움을 싫어할 자가 있을까?
더구나 현대는 가히 ‘쾌락’의 시대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기쁨과 즐거움은 그러한 쾌락과는 거리가 멀다.
세상이 추구하며 또한 주려는 것은 대체로 자기 몸의 감각과 관련되고,
조금 더 나아가서 정신적 차원이나 이타적인 수고를 통한 보람이라는 기쁨과 즐거움도 관련된다.
세상에도 고상한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그러나 다윗은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을 말하는데
이것은 세상이 주는 것, 사람들이 좇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무엇보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시고 내가 주께 피함으로써 얻는 기쁨이다.
세상에도 나를 지켜줄 사람이, 그러한 곳이 있기는 있지만 늘 그러한 것은 아니다.
그 한계는 너무나 명확하다.
그러므로 세상이 보장하는 기쁨은 결코 “충만한 기쁨”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충만하다.
왜냐하면 충만하게, 즉 완전하게 지켜주시기 때문이다.
그 충만함, 완전함은 모든 범위와 모든 정도를 다 망라한다는 의미다.
세상에 그러한 보장은 없다!
모두가 제한적이며 부분적일 뿐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궁극적인 기쁨이 될 수 없다.
어느 정도까지는 그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설정하는 기쁨의 기대는 그 정도에 그친다.
그리하여 모든 영역과 정도가 아니라 부분적인, 특정한 영역에서만 가능한 한 극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경향을 띈다.
그것은 대부분 육체적인 쾌락 쪽으로 특화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때로는 안전한 보호를 제공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이 피난처가 아닌 듯한 것이다.
성도가 세상에서 오히려 고난을 당하고 기쁨과 즐거움 대신에 괴로움과 고통을 겪는 일은 매우 흔하다.
특히 험난한 시대에 박해를 당하는 것 말고도
일상적으로 닥치는 재난─사고, 질병 등─에서도 성도가 언제나 안전한 것은 아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며, 내가 하나님께 피함으로써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을 얻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재난과 비극적 사건들은
하나님께서 선하고 아름답게 창조하신 질서에서 이 세상이 벗어났기 때문에 일어난다.
또는 인간의 죄악에 대해 하나님께서 심판하심으로써 벌어지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모든 일에 인간의 죄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다.
그 제한성과 그 고통의 최종점은 죽음이다.
죽음에서 면한 피조물은 없다.
그것은 그렇게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반역했기에, 창조 질서를 어겼기에 따르는 마땅한 대가다.
그러므로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는다.(로마서 8:22)
성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은
만물에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을 보장한다.
그것은 약속대로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에 궁극적으로 절대적으로 이루어진다.
구약의 예언들을 예수께서 완전히 이루신 것을 봄으로써
예수께서 다시 오셔서 그 일을 이루실 것을 분명히 믿을 수 있다.
인간의 범죄와 타락으로 세상이 끝장나지 않았고,
오히려 완전한 구원과 회복을 하나님께서 다시금 이루실 것이므로
그 어떤 재난과 고통은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에 흠을 내지 못한다.
그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으로 세상에서의 모든 문제가 다 상쇄된다.

그리고 성도는 “땅”에서도 이미 그것을 충분히 맛보고 누릴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거룩한 관계─예배와 사귐과 사명의 감당─를 통해,
하나님께서 특별히 주시는 여러 가지 선물들─산업과 잔의 소득과 분실과 기업─을 통해,
그리고 “존귀한 자” “성도”들을 통해 주어진다.
이것이 성도의 복이다.
이 복은 세상에서 겪을 많은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성도에게 이 “땅”에서도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을 맛보게 한다.
이것은 어떤 손해나 아픔이나 죽음으로도 손상되지 않는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다윗이 이것을 노래하고 있다.

아마도 내게 참으로 모자라고 그리하여 더욱 필요한 것은
이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에 대한 지각과 감각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
곧 “땅”에서의 복과 궁극적인 완전함에 대한 감사와 더 큰 갈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