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8:27-9:1, 인자의 고난)

예수께서 갈릴리 사역을 마치고 이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했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시고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나”라고 대답한다.
사람들은 예수를 세례 요한으로, 엘리야로, 선지자 중 하나로 알지만
제자는 예수가 누구신지 정확히 알았다.
그것은 어제 본문에서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는
예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상쇄하는 답이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 곧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세주로 오셨다.
그것을 사람들이 알도록 가르치시고 고치셨다.
사람들은 충분 이상으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즉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구세주이심을 확실히 보여주는 증거들을 체험했으면서도
기껏해야 신비한 능력의 소지자 정도로만 알고 있다.
제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 스스로 때로는 예수님이 주시는 큰 권능을 행하기까지 했으면서도,
그들이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면
자동적으로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전혀 생각지 못하고
그저 놀라서 ‘이분이 누구신가’ 하고 의아해 하며,
예수께서 전능하신 구세주로서 무엇이든 행하실 선한 주님으로 의지하기보다
상황에 눌려 두려워하고 떨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제 베드로의 고백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확실하게 알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이 ―베드로도 포함해서― 생각하는
“그리스도”, ‘구세주’와는 달랐다.
베드로는 잘 고백했지만 더 잘 알아야 한다.
베드로가 아직 전혀 알지 못하는 중대한 사실이 있다.

이제 비로소 예수님은 “고난”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 고난은 분명 베드로가 생각하는 그리스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고
오천 명과 사천 명을 먹이시는 권능을 행하시지 않았는가.
그 권능은 그리스도에게 딱 맞는 모습이다.
이제 여기에 영광과 왕권까지 추가하면 더욱 완벽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가 놀랄만한 말씀을 하셨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이다.
마지막에는 잘 되는 것 같지만 그 앞에 이해할 수 없는 상당히 긴 과정이 있다.

예수께서 이제 드러내놓고 말씀하시는 “고난”의 예고는
배척이나 박해나 고문 정도가 아니라
최악의 경우, 곧 죽음에 초점이 있다.
예수님은 길지 않은 말씀에서 죽음과 관련된 많은 내용을 언급하셨다.
예수께서 “죽임”을 당하신다.
그리고는 이것이 제자들에게도 해당되는 일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여러 번 “목숨”을 잃는 것에 대해 강조하셨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예수님처럼 죽임을 당한다.

아, 이 말씀을 어찌 감당하랴.
그러나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그때 이 말씀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결국 모두 이 길로 갔다.
즉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오려거든” 해야 할 일들을 다 순종으로 했다.
모두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랐다.
그들은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목숨을 잃었다.
예수님은 당신께서 먼저 행하시는 일을 제자들도 뒤따라 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다 예수께서 하신 일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따르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셨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복음을 위해 자기 목숨을 잃으셨고 그리고 다시 살아나셨다.

내가 예수님의 순종을 얼마나 따라 할 수 있을까.
그저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