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6:1-11, 순종의 범위)

아브라함은 세상을 떠났고 에서와 야곱은 청년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삭은 아버지를 이어 영적 가장으로서
하나님께서 이루실 “큰 민족”을 이뤄가는 준비를 더욱 잘 해야 한다.
한 번 더 닥친 흉년은 이삭에게 영적 훈련의 기회가 될 것이었다.

그 훈련의 핵심은 무엇인가?
바로 “순종”이다.

하나님께서 흉년의 때에 이삭에게 주신 명령이 있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에 거주하라는 말씀이다.
성경은 이 흉년이 두 번째 인 것을 강조하면서
첫 흉년이 아브라함 때였음을 상기시킨다.
왜 이것이 기억되어야 하는가?
그때 두 가지 실수가 있었다.
아브라함이 흉년을 피해 애굽에 간 사실이요,
그리고 거기서 목숨 부지를 위해 ─실제적인 위협이 아니라 가상적인 두려움에 의해─
아내를 팔아버리는 비굴한 실책을 범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제, 두 번째 흉년에
이삭에게 특별히 애굽으로 가지 말 것을 명하는 뜻은 무엇인가?
이삭은 어디까지 순종해야 하는가?
두 가지 다다.
이삭은 아버지의 두 가지 실수─애굽 행과 리브가 사건─를 다 기억해야 한다.
더구나 아브라함은 리브가를 버리는 잘못을 두 번이나 했다.
애굽 왕에 이어 그랄 왕 아비멜렉 앞에서 아브라함은 큰 실책을 범했다.
그러면 이삭은 옛 흉년 때 벌어졌던 사건 모두를 다 상기해야 한다.

그러나 이삭은 하나님께서 애굽에 가지 말라는 명령만 순종했다.
이것은 좀 궁색한 순종이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가지 말라고 했으므로 애굽에만 가지 않으면 되는 것인가?
만일 몸은 여기 있으면서 애굽에서 할 행동을 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인가, 아닌가?
이삭의 순종의 범위가 그러했다.
그리고 사실 이것이 나의 상투적인 실책이다.
나의 어리석은 핑계는 무엇인가?
오늘 말씀 묵상 가운데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을 들었다면
그날 살인은 하지 않겠지만,
간음을 하면서 나는 살인하지 말라는 하나님 명령에 순종했다고 말하는 것 말이다.
이런 식으로 나는 나의 숨겨진 죄를 얼마나 합리화하는가!
아, 이러할 때 나는 묵상을 빙자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제한하는 꼴이 되며
나의 탐욕에 유리하게 순종의 범위를 임의로 한정하는 셈이다.

이삭이 의도적으로 했다기보다는 실수한 것이겠지만,
나는 그보다 더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어제 하신 말씀은 마치 오늘 순종의 범위에 들어있지 않은 것처럼
나의 불순종을 합리화하는 간계가 내게 있다.
나의 음흉함이 오늘 성경에서 고발된다.
나는 나의 실책이 모두가 보도록 성경에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니
참으로 부끄러워서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 앞에 무릎 꿇고 긍휼에만 의지해야 한다.
다시 순종하도록,
이번에는 온전히 순종하도록
하나님의 은혜에 거하도록 간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