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9:1-20,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오늘의 본문은 아브라함의 신실한 종이
이삭의 신부 마련을 위해 하란으로 떠나던 장면(24장)이 바로 연상된다.
참 아름다운 사건이 아주 흡사하게 반복된다.
그 종이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는지를 제일 먼저 들은 사람은 리브가였다.
그는 우물가에서 그 말을 처음 들었고,
집에 와서 아버지와 오빠와 함께 또 들었다.
그것은 얼마나 놀랍고 감격스러운 사건인가!

그리고 리브가는 바로 그 길을 떠나는 야곱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것이다.
아무리 황급한 도피의 길이었어도
리브가가 그것만큼은 일러주지 않았겠는가.
리브가가 결혼하고 20년 뒤에 두 아이들 낳고
에서가 40세에 헷 족속의 여인과 결혼하면서 문제가 더 심화되고
결국 축복 사건으로 야곱이 떠나게 되었으니
적어도 60년 전의 일을 떠올리며
리브가는 야곱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때 아브라함의 종을 인도하신 것처럼 야곱을 인도하시기를,
그때 리브가 자신이 그 종과 함께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길이 얼마나 순적하였는지를 생생히 기억하며
그 안전을 하나님께서 또 보장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 이야기를 해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귀한 이야기이므로
리브가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매우 자주 자녀교육을 위해 이 장면을 들려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자신과는 아주 다른 형편으로 외롭고 불안하게 기약 없이 떠나야 하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그 이야기를 또 들려주지 않겠는가.
지금과 같이 절실하게 하나님의 인도와 도우심이 필요한 적이 있을까.
전에는 자랑스런 무용담 같았던 간증이
이제는 절박하게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하고 인도를 받아야 하는지를
급하게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다.
야곱은 어머니의 간절한 당부를 듣고 그 길을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야곱은 정작 그 길을 가는 법을 어머니보다도 더욱 생생하게 하나님께 배운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비결을 숙지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에서
아예 그럴 필요도 없이 하나님께서 친히 오셔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인도하시겠다고 확약하신다.
그의 침체된, 실패자의 심령이 얼마나 위로받고 힘을 얻었겠는가.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대로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그를 지키시고 이끄시는 길을 갔다.

그리고 드디어 하란 가까이서 우물가에 이른다.
거기서 라반에 관해 듣고 아예 라헬을 만나기까지 한다.
아브라함의 종을 인도하셨던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직접 야곱을 인도하셨다.
아브라함의 종은 그의 주인과 함께 아주 잘 준비된 자로서 이 길을 걸어온 자다.
그러나 야곱은 그와는 정반대의 처지에 있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그의 도덕적 자격이나 영적 정결을 따지지 않고
그를 만나시고 그에게 약속하시며 그를 친히 이끄시고 지켜주셨다.
야곱은 하나님을 볼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손을 만질 수 없었지만 그 먼 길 내내 하나님의 손이 그를 이끄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최종 목적지에 왔다.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실패한 자와, 죄 지은 자와 하신 약속도
신실하게 지키시는 이 놀라운 일을 그는 경험한다.

나는 하루의 이 짧은 길을 어떻게 갈지 아직 모른다.
어제와 같은 일과가 거의 동일하게 주어지고
나는 또 그 일상으로 하루를 살 것이지만,
몸은 시간에 맞게 배고픔을 알리고 그것을 충족시킬 식사는 예외 없이 차려지고
이동할 때마다 전철의 시간은 거의 지켜지므로
나는 똑같은 하루를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하루의 어떤 순간, 몇 초의 방심에 의해 넘어질 수도 있고,
내게 불운한 사고만 아니라 심지어는 나도 모르게 남에게 손해를 입힐 수 있다.
나는 불과 몇 초의 흥분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정선되지 않은 단어를 뒤섞을 수 있으며
“몇 날 동안” 불편할 대면이나,
심지어는 20년이 갈지 모르는 불화와 단절을 겪을지 모른다.
나는 실책의 여지없이 안전이 보장된,
특히 죄 안 지을 영적 안전이 보장된 하루를 살지는 못한다.
한 주간은 어떻고 한 달은, 일 년은, 일생은
그 얼마나 어두운 골짜기며 미지의 바다이며 무한의 안개속일 수 있는가.
그래도 야곱보다는 낫지 않았는가.
나도 죄를 많이 지었지만 야곱처럼 어디를 도망가야 했던 것은 아니잖는가.
그러한 그도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이끄셨는데,
그의 할아버지와 그의 아버지와 그의 믿음을 따르는 그들의 믿음의 자손인 내가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염려할 것은 없잖은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주시겠다는 약속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그의 “자손”에게 하신 약속이다.
내가 참으로 60여 년 전의 처녀시절 그 아름답던 날의 기적과 같은 신비한 사건을
리브가가 경험한 것과 같이,
야곱이 40세 넘어 이 고단한 길을 가야하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생생하게 인도하셨던
그 놀랍고 선하신 권능에 눈이 번쩍 뜨고 마음을 벌떡 일으켜
감격스럽게 새 하루를 살아야 하기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