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8:28-19:3,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뜻)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왕이 아람과의 전쟁에 나선 것은
여호사밧이 제기했던 “여호와의 말씀”에 명확히 어긋나는 결정이었다.
아합은 하나님을 떠난 자이므로 아예 하나님의 뜻을 고려할 자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이 중요하다면 자신의 선지자들을 동원해서 얼마든지 자기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주장할 수 있는 자였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으며 섬기는 왕이요,
특히 남유다의 신앙적 개혁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중요했고 그에 따라 행동할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볼 것을 제의했고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들었다.
미가야 선지자는 이 전쟁을 통한 하나님의 아합 징벌에 관한 뜻을 명확하게 전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전쟁에 나가라는 뜻을 ─특히 여호사밧에게─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두 왕은 전쟁에 나갔다.
둘 다 하나님 뜻을 어긴 출정이었다.
아합은 하나님 뜻을 무시하고 자기 뜻을 관철하러 나갔고,
여호사밧은 그가 청했던 하나님 말씀을 듣고도 하나님 뜻이 아니라 아합의 뜻을 따라 전쟁터에 나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 전장에서 아합은 죽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징벌하시려는 뜻이 그렇게 이루어졌다.
그러면 여호사밧은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은 이 전쟁과 아합의 운명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셨다.
여호사밧은 자신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이유로 어떻게 하든 상관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를 전쟁과 함께 징벌하실 것이라고는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했다.
그는 자신뿐 아니라 아합도 말려야 했다.
그가 아합이 나가도록 그냥 둔 것은 결국 아합이 그 전쟁에서 죽으리라는 하나님 뜻을 무시한 것이며,
또한 사돈 아합을 전혀 위한 것이 아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의 징벌을 수행하기 위해 아합을 전쟁터에 내몰려는 고상한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냥 줏대 없이 끌려갔을 뿐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러한 “그를 도우”셨다.
아합이 그 전쟁에서 죽는 것은 하나님 뜻이지만 여호사밧이 죽는 것은 하나님 뜻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아람 군대가 그를 죽일 뻔한 위기에서도 “하나님이 그들을 감동시키사 그를 떠나가게” 하셨다.

아합은 활에 맞아 종일 고생하다 죽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평안히 예루살렘에 돌아”왔다.
그는 그날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모든 것을 본 것이다.
그는 아합이 죽는 것을 보고 자기도 거기서 죽은 것임을 알았어야 한다.
실제로 그는 죽을 뻔했다가 하나님이 살려주셨다.
그는 하나님의 권능에 참으로 두려워하며 그 은혜에 감사하고,
자신의 불순종에 회개해야 했다.
그러나 그가 그러하기 이전에 선견자 예후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아니, 여호사밧이 늦은 것이다.
그가 먼저 회개했어야 한다.
그는 “평안히”가 아니라 ‘고통스런 마음으로’ 돌아왔어야 한다.

하나님은 예후를 통해 명확히 말씀하셨다.
이날 여호사밧이 한 일은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한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것이며 하나님을 무시한 것이며 사실상 배반한 것이다.
예후는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라”는 말씀까지 전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일로 하나님의 어떤 “진노”가 여호사밧에게 임했는지는 언급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가 하나님의 경책의 말씀을 들은 것 자체가 하나님의 “진노”일 것이다.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질책에 대한 여호사밧의 태도는 그의 아버지 아사와 대조된다.
아사는 35년 동안 “선과 정의를 행”하는 왕이었다가
36년째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국방 정책을 획책하고, 선지자의 질책에 분노하며 그를 옥에 가두었다.
그는 회개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자신을 꾸짖는 예후의 말에 맞서지 않았다.
그 다음 말씀─내일 본문─은 계속되는 여호사밧의 개혁에 관한 설명이다.
그렇다면 그는 선견자 예후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어찌 개혁을 할 수 있으랴.

하나님은 아합을 징벌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전쟁에 동행한 여호사밧은 살리시되
질책의 진노를 통해 그로 개혁에 전념하게 하셨다.
이로써 하나님의 뜻은 다 이루어졌다.
악인은 자신의 죄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자신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성도는 죄를 짓고도 하나님의 은혜와 질책과 회개로 사명으로 돌아와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