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8:1-11, 여호와의 이름으로 진실한 것)

아합이 길르앗 라못의 협공을 제의했을 때
여호사밧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를 물어볼 것을 요청했다.
그리하여 아합은 400명의 선지자를 불러 그가 원하는 대답을 들었다.
사실,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의 바람─사실은 왕의 바람─을 말했다.
“하나님이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그렇게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들 가운데 대표라고 할까, 시드기야는
이들의 말이 이 문제를 거론했던 여호사밧 왕의 요청에 대한 정확한 답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제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이라고 전한다.
자신의 생각이나 바람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바로 이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뒤에 아합이 마지못해 부른 미가야 선지자는
그에게 “좋은 일로는 예언하지 아니하고 항상 나쁜 일로만 예언하는” 자였다.
그리하여 미가야가 처음에 “왕에게 좋게” 말하였을 때
아합은 그것이 미가야의 진의가 아닌 것을 이미 알았다.
그러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진실한 것”을 말하라고 재촉한다.
아합은 자기 말이 얼마나 모순적인지 알고 있다.
그는 곧 이어 미가야가 말할 “나쁜 일”, 즉 “재앙”이, 곧 “여호와께서 ··· 아합을 ··· 죽게 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그는 알았다.

아합에게는 애초에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 ‘좋은 일’을 하려는 것이며,
굳이 선지자들까지 동원하여 말을 시킨다면 “왕에게 좋게” 말하는 것을 들으면 되는 것이었다.

내게 좋은 것이냐 아니냐는 절대적인 기준이나 목표가 되지 못한다.
하나님이 뜻하시는 것인가 아닌가, 이것이 관건이다.
이것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내게 좋은 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게 나쁜 것이 하나님의 뜻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이므로 그것을 따르는 것이 성도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아합은 그렇다 치고 여호사밧이 보이는 태도다.
그는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를 물어보자고 ‘먼저’ 제의했던 자다.
그러나 그가 400명과 시드기야의 같은 말을 듣고, 미가야의 다른 말을 듣고도
그는 결국 앞의 말을 따른다.
시드기야도 미가야도 모두 자기가 “여호와의 말씀”을 들었다고 주장해서 헷갈린 것인가?
아마도 여호사밧은 아합과 같이 자기 뜻을 이루려 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사돈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외교적으로 나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님에도 따른다면
그는 결국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을 따른 것이며,
그리하여 자기 뜻을 이룬 것이 된다.

아마도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보다
그러한 것을 물어보는 ‘절차’를 갖는 것에 만족하기 쉽다.
이것은 결국 ‘종교적인 자기만족’에 이를 뿐이다.
여기서 다시금 나는 나를 본다!

그러나 놀라운 것이 또 하나 있는데,
인간의 어리석고 완악한 꾀에도 불구하고 결국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고 만다는 사실이다.
아합은 미가야가 자기에게 “좋게” 말하지 않고 “나쁜 일로만 예언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미가야가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라고 하였으므로
두 왕이 길르앗 라못을 협공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만일 그가 전장에 나가면 미가야의 예언대로 그는 죽을 것이다.
이때 그에게는 전쟁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귀로에 선다.
그가 만일 개전을 하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기 뜻대로 전쟁에 나가면 그는 죽을 것이요,
그럼으로써 그에게 재앙을 내리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그가 무엇을 해도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게 된다.
분명히 말하건대, 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룬 자가 아니다.
그는 자기 뜻만을 좇았다.
그러나 이루어진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가 이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 뜻을 거두고 하나님께 회개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이며,
그럼으로써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회개가 그에게 최선의 길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여호사밧에게도 적용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