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8:1-11,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여호사밧은 그때까지의 왕들 가운데 처음으로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였다고 평가된 왕이다.
그는 아버지 아사가 부분적으로 수행한 개혁을 완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개혁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었고 지도자들을 세워 “율법책”을 각 성읍에 다니며 가르치게 한 것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오직 ··· 하나님께 구하며 그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평생과 모든 사안에서 일관적으로 행해진 것은 아니었다.
오늘 본문은 여호사밧이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 관계를 맺었더라”고 시작한다.
그의 아들 여호람이 아합의 딸과 결혼하게 된 것이다.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으로 두 왕국이 갈라진 뒤에 이스라엘 안에서의 적대관계와 전쟁은 계속되어왔다.
둘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신앙적인 것에 의해 결정된 것이었지만
왕들에 따라 정치적으로도 영향을 받았다.
여호사밧이 아합과 외교적 화친에 이른 것은 전적으로 정치적인 고려에 의한 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북이스라엘의 왕들 가운데 아합은 하나님께로부터 가장 멀리 떠난 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였다.(열왕기상 17:30)
특히 그가 왕비로 맞은 이세벨은 북이스라엘을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를 나라로 만들어놓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는 여호사밧이
아합 가문과 자녀들의 혼인으로 인척관계를 맺은 것은 대단한 실책이었다.
이것은 군사적으로나 국제정치적인 고려로 그렇게 하기에는 영적인 의미가 너무 큰 사안이었다.

여호사밧이 아합을 방문했을 때 그는 아람의 길르앗 라못 협공을 제의받았다.
그리고 여호사밧은 그제야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 물어” 볼 것을 생각했다.
이것은 분명 하나님께 여쭤볼 사안이다.
아람과 전쟁을 할 것인가의 문제도 중요하고
이 일에 북이스라엘과 동맹적 입장에 서야 하는지의 여부는 더욱 중요한 사안이었다.

역대기는 이 일에 대해 여러 선지자들이 소환되어 과연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를 알아가는 과정을 꽤 길게 기록한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그 과정에서 분명히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를 들었으면서도
그에 따르지 않았다.
그는 목숨은 살아 돌아왔지만 사실 영적으로는 처참한 귀환이었다.
그리고 그는 바로 선지자 예후의 질책을 받는다.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여호사밧의 질문은 매우 늦었다.
그는 아합 왕의 아람 협공 제의에 “먼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보자고 제의하였지만,
과연 그는 그것이 “먼저” 해야 할 일인 줄을 제대로 알았다고 할 수 없다.
정말로 그가 그것을 알았다면 그는 “이 년” 전, 인척관계를 맺을 때,
그때 이미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를 물어봤어야 한다.
그가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였다는 평가에는 그가 “오직 ··· 하나님께 구하”였다는 사실이 당연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그는 아합 가문과의 자녀 혼인 문제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를 “먼저” 묻지 않았다.
이때 “먼저” 할 일이 선행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후의 “먼저”는 사실상 의미가 거의 없게 된다.
그것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된다.
물론 회개의 기회는 언제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막상 전쟁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해지자 그때야 비로소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를 “먼저” 묻자고 제의하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에 최우선의 권위와 근거를 두지 않은 셈이 되었다.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를 듣고도 그와 반대되는 행동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선지자의 지적을 받고서야 알게 된다.
그는 “먼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 것같이 행동했지만
사실상 그것은 형식적 절차에 불과했다.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를 물어보는 이유는 그것을 알아서 그에 따르기 위함이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경우에 이것을 형식적으로만 절차로서 치르고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를 묻기만 하고─
드러난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살기가 참 쉽다.

진정으로 모든 경우에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를 물어보아야 한다.
또한 그것을 “먼저” 한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절차를 밟는 형식적 만족이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순종하는 것을 반드시 의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