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5:1-19, 누구든 하나님을 찾으면, 찾지 아니하면)

아사 시대는 다윗 왕의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왕이 앞장서서 하나님을 찾았고, 또한 선지자도 나와서 하나님을 찾으라고 독려했다.
그리하여 전쟁의 위기에서도 오직 하나님을 찾으므로 하나님께서 적을 물리쳐주시고
유다는 평안할 수 있었다.

이때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우상숭배를 척결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죄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할뿐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 말씀은 선지자를 통해 거듭 강조되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선지자가 하나님을 찾는 것의 예를
역사적으로 오래 전 이스라엘의 불순종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고,
또한 아사 왕은 현재의 북이스라엘 백성에게 확대하여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하나님을 찾는 자의 범위가 당시의 유다 백성에만 국한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아사랴 선지자가 개탄하는 이스라엘의 상황은 ‘사사’ 시대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에는 참 신도 없고 가르치는 제사장도 없고 율법도 없은 지가 오래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패역한 상황에서도
“그들이 그 환난 때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가서 찾으매 그가 그들과 만나게 되셨”다!
사사기에서 숱하게 만나는 죄와 징벌과 회개와 구원은
오직 죄인이라도 하나님을 찾으면 만나주시는 은혜의 역사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상황은 바로 아사 왕 당시의 북이스라엘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북이스라엘이야말로 “참 신도 없고 가르치는 제사장도 없고 율법도 없”는 나라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을 불러 ─찾아─ 솔로몬과 르호보암의 죄에 대한 대안적인 왕조를 세우셨지만
그는 끝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의 길로 갔다.
그리고 제사장을 폐하고 내쫓았다.
이제 제사장은 우상들의 사제로 바뀌었다.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찾지 않았고 우상을 찾았다.
그럼에도 이들이라도 “환난 때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가서 찾으”면
“그가 그들과 만나”실 것이다.
이후의 역사에서 그러한 예가 많이 나온다.
북이스라엘의 가장 패역한 왕인 아합조차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고 그를 죽인 뒤에 하나님이 보내신 엘리야 선지자의 질타를 듣고 그가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겸비함”을 보시고 재앙을 거두셨다.

나는 어느 누가 하나님을 찾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감히 판단할 수 없다.
나는 편협하고 편견이 강해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고 나의 선호도에 따라 사람들을 믿기도 하고 불신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결코 하나님의 판단에 부합되지 않는다.
나는 혹시 내가 보기에 하나님을 찾는 여부로 사람을 나누고 차별할지 모르나
내가 사람의 진심을 어찌 알랴.
하나님은 모든 죄인이 하나님을 찾을 기회를 주셨다.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기뻐하신다.
아, 내가 돌아온 탕자의 형과 같은 마음이어서는 안 된다.

아사랴의 말씀이 직접적으로 당시의 북이스라엘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아사 왕은 하나님을 찾는 자가 북이스라엘 백성 가운데도 있음을 중시한다.
그는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시므온 가운데에서 나와서 저희 중에 머물러 사는 자들을 모았”다.
이들은 르호보암 때 북이스라엘에서 돌아온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이외의 백성들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고 아사에게로 돌아오는 자가 많았”다.
이러한 이동과 돌아옴이 아사 왕 때에도 일어나고 있다.
북이스라엘 가운데도 하나님을 찾는 백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끝내 하나님을 찾으러 유다로 왔고 하나님이 만나주셨다.

하나님을 찾는 자가 유다 백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반대로 하나님을 찾지 않는 자, 심지어 버리는 자가 유다 백성 가운데도 있음을 암시한다.
심지어 이 개혁 왕 아사의 어머니가 “아세라의 가증한 목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사는 그의 모친을 태후의 자리에서 폐위했다.
하나님을 찾는 자는 죄인들 가운데 있는 자라도 하나님께서 받아주시고,
하나님을 찾지 않고 ─아! 버리고─ 우상의 길로 가는 자는 하나님을 찾는 자들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버림을 받는다.
누구도 그가 처한 부류에 의해서 규정되지 않는다.
본인 자신이 하나님을 찾는가, 찾지 않는 가에 의해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고, 버리시는 여부가 결정된다.
이것은 참으로 감사하면서 또한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나의 편견으로 사람들을 잘못 구분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과,
그러나 나의 판단에 의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공의롭고 자비로우심에 의해 판단된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그리고 내가 어떤 상태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찾으면 받아주시는 것에 대한 감사와,
반면에 하나님을 찾지 않을 수도 있는 나의 완악함과 연약함에 참으로 경성하며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