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3:1-14:1, 긴 3년)

다윗의 계보로 이어지는 왕조의 역사에서 오늘 본문의 아비야 왕은 당시로서는 재위 기간이 가장 짧다.
다윗의 30년, 솔로몬의 40년, 르호보암의 17년에 훨씬 못 미친다.
초대 통일 이스라엘 시대의 다윗과 솔로몬보다는
남북 왕조로 분단된 이후의 역사에서 아비야의 재위가 어떠했는지를 더 분명히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의 통기기간에 비하면 채 1/6도 되지 않는 이 짧은 3년에 아비야는 르호보암보다 더 모범적인 일화를 남겼다.
오늘 본문은 3년의 기간에 비하면 매우 긴 분량으로 한 사건을 집중적으로 기록한다.
사실 이 이야기는 열왕기상에서 단 한 줄로 써진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사는 날 동안 전쟁이 있었더니”의 내용 속에 들어 있던 사건을 자세히 전하고 있다.
즉 앞의 책에서 기록되지 않은 사건이 언급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로 이렇게 전체적으로 알게 하신다.

여로보암의 등장으로, 즉 백성들에 의한 그의 왕의 옹립으로
두 왕이 통치하는 두 왕국으로의 분열이 벌어졌다.
르호보암은 사실 자신의 잘못에 의한 것이었고,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인데도 이 사건을 전쟁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의 개입으로 르호보암의 정책은 시도되지 않았다.
이번에 아비야의 경우에는 그와 매우 다르다.
그는 북이스라엘과의 싸움을 군사적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그는 동족 북이스라엘과 병력적인 우위로 이길 작전에 몰두하지 않았다.
아비야가 산위에 올라가 북이스라엘을 향해 외친 것은 이 문제를 신앙적으로 조명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즉 북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는 것, 하나님의 제사장 직분을 인위적으로 변개한 것,
이 모든 것은 한마디로 “그(여호와 하나님)를 배반”한 것이며, 결국 이 전쟁은 “하나님 여호와와 싸우”는 일이다.
이에 반해 아비야의 남유다는 “그를 배반하지 아니하였고” “하나님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대조했다.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의 군사적인 침공이 시작되자
아비야는 “여호와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이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을 아비야와 유다 앞에서 치시”는 일이 벌어졌다.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유다의 “손에 넘기셨”다.
그것은 곧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음”으로 귀결된 것이었다.

이 전쟁에서 남유다가 이겼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
이것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싸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로보암은 아비야를 이기려고 했겠지만 이 전쟁은 북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싸움이었다.
아비야가 바로 그것을 경고했다.
“하나님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
그런데도 그들이 침공을 개시한 것은 결국 하나님과 싸우겠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셨다.

이러한 내용이 소상히 본문에 기록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아비야의 치세 3년 가운데 일부의 이야기다.
만일 아비야의 행적이 이 일뿐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가 3년 동안 한 일이 이 사건뿐이라면 그는 얼마나 제대로 산 것인가!
그러나 그의 3년은 이보다 훨씬 길었다.
그는 이 외의 일도 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일이 아니라 그 반대의 일을 했다.
역대기의 저자는 사실 이 놀라운 행적을 기록하면서도 왕들에게 각각 적용되는 평가를 아비야에게 유리하게 내리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아사 왕),
또는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여호사밧 왕) 같은 평가가 기록되지 않았다.
열왕기서는 오히려 그 반대의 평가를 쓴다.
아비야는 “그의 아버지가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의 마음이 그의 조상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다.

르호보암 시기에 북이스라엘에서 제사장들이 도망쳐왔을 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들이 “삼년 동안 유다 나라를 도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강성하게 하였으니
이는 무리가 삼년 동안을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였음이라”.
“삼년”의 시간 동안 르호보암은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였음”에 비해,
똑같은 길이인 그 “삼년” 동안에 아비야는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는 일에만 몰두하지 못했다.
그러한 적도 있었지만 그것은 잠깐이었고 우상숭배로 돌아섰다.
아비야에게 그 짧은 재위기간 “삼년”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는 충분한 기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기간을 너무 길게 쓴 듯하다.
그것은 르호보암이 “여호와를 구하는 마음을 굳게 하지 아니”하였다는 사실의 재현이었다.
시간적 길이는 중요하지 않다.
연속성과 농도가 그 시간의 판단을 결정한다.
아비야는 “마음을 굳게” 하여 이 짧은 삼년을 하나님만 의지한 기간으로 길게 살았어야 했다.
이것저것 ─하나님을 의지하기도, 우상을 섬기기도─ 하면서 길게 살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