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2:1-16, 마음을 굳게 하지 아니함)

르호보암은 아버지 솔로몬의 길을 따라갔다.
그의 17년 통치는 솔로몬의 40년 재위를 축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은 그에 결코 버금가지는 못했다.
솔로몬이 처음에 잘했던 것만큼 르호보암이 처음에 잘한 것은 없었다.
단지 그가 나중에 더욱 나빠진 점에서 솔로몬과 같았다.
그가 나중보다 처음에 나았던 것은 단지 북이스라엘과 비교해서일 뿐이었다.
그는 상대적으로 나았다.

오늘 본문의 비극적인 서두는 “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로 시작한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중심이었다.
하나님께 대한 자세, 즉 율법의 순종 여부가 이스라엘을 견고하게 하거나 흔들리게 했다.
그리고 왕이 하면 백성이 따라했다.
여기서는 심지어 남유다만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하나님의 율법을 버림으로 인한 왕과 이스라엘의 흔들림은 곧 전쟁으로 귀결되었다.
르호보암은 국방과 전쟁에 상당히 민감했고 정책적으로 애를 쓴 왕이었다.
그의 치세 동안 이스라엘과 “항상 전쟁이 있”었다.
그는 성읍을 견고하게 하는 것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 나라의 중심이 흔들릴 때 그 애쓴 국방의 노력은 금방 허사가 된다.
르호보암 통치 5년 만에 “애굽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왔다.
그리고 상당한 전란을 겪었다.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을 빼앗”겼고, 예루살렘도 침공되었는데,
심지어 “여호와의 전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모두 빼앗”겼다.

그것은 하나님의 징벌이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분명히 하셨다.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넘겼노라”
그러나 성전까지 유린당하는 이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나아갈 길은 남아 있었다.
솔로몬이 이미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는가!
성전 건축이 완공되었을 때 솔로몬은 성전이 “기도하는 집”임을 정확히 알았다.
이스라엘이 어떤 상황을 만나도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을 간구했다.
솔로몬이 상정한 상황에는 당연히 범죄로 인한 전쟁이 포함되며,
또한 그가 말하는 기도의 의미는 “재앙과 고통을 깨닫고” “죄에서 떠나”는 것이며,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게 돌아”오는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말씀에서도 반복되었다.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그리고 이제 르호보암과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렇게 행했다.
그들은 “스스로 겸비하여”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아갔고 하나님의 사하심과 구원을 받았다.

르호보암 재위의 전체적인 평가는
그가 “악을 행하였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구하는 마음을 굳게 하지 아니함이었더라”였다.
그가 잘 한 것도 있었지만 그의 총평은 부정적이며 비극적이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끝까지 일관된 믿음을 견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마음을 굳게 하지 아니”했다.
애굽 왕의 침공 시에 보였던 “스스로 겸비함”도 오래 가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바로 이 점이 그가 솔로몬을 닮은 모습이다.
그리하여 그는 다윗이 아니라 솔로몬의 길로 갔다고 할 수 있다.
그를 평가하는 오늘 본문의 마지막 대목에서 그가 41세에 왕이 되어 17년을 통치했다고 밝힌다.
선왕 솔로몬이 40년 동안 왕위에 있었으므로 르호보암은 솔로몬이 왕이 되기 1년 전에 태어난 것이다.
그러면 다윗은 그를 ─자신의 손자를─ 보았겠지만 그에게 영향을 미칠 시간은 갖지 못했다.
르호보암은 다윗을 보지 못하고 아버지 솔로몬만 보고 자랐다.
아마 그가 왕위에 가까워지는 시점에 솔로몬은 처음의 바른 신앙에서 이미 이탈한 상태였고
왕으로서 따를 본보기는 솔로몬의 실정뿐이었을 것이다.

솔로몬은 르호보암에게 모범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솔로몬이나 르호보암이나 모두 끝까지 “마음을 굳게 하지 아니”했다.
솔로몬은 자신에게도 적용된, 아니 자신에게서부터 적용된
다윗의 표준을 따르는 일, 다윗을 기준으로 평가되는 일의 의미를 제대로 알았어야 했다.
자기 아들 르호보암도 다윗을 기준으로 하여 평가된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먼저 그 모범을 따랐어야 하며 아들도 그 길을 가도록 가르쳤어야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 길에서 이탈하자 아들도 그를 따랐고
결국 다윗을 기준으로 한 평가에서 못 미치게 된다.
부모가 자녀에게 자신을 따르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라는 표준을 따르도록 하는 것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