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1:1-15, 중매)

바울이 사도라고 할 때 그것은 교회 조직에서의 중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어느 교회의 당회장이 아이었으며 노회장 총회장, 또는 감독도 아니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였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자신의 사도직의 정의였다.

그것을 더 쉽고 분명하게 말하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중매”하는 것이다.
중매는 신랑과 신부를 연결해주는 역할이다.
이들이 아름다운 부부가 되고 가정을 이루는 첫 단계로서 둘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이 중매다.
중매의 역할은 결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세상에서의 혼인에서는 서로 모르는 남녀에게 각각 상대방을 잘 소개시키는 일을 중매자가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님과 그의 신부 후보와의 중매는 사실 일방적이다.
예수님은 이미 그 후보를 잘 아신다.
문제는 예비 신부가 신랑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적으로 중매의 역할은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인지 소개하고
잘 설명하고 설득하여 그를 자신의 반려로 ─주님으로─ 맞이하게 하는 일이다.

어쩌면 세상에서의 결혼은 일차적인 소개와 그 이후에 만남이 지속되도록 돕는 중매의 역할보다
본인, 당사자들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
그들은 중매를 통한 관계 형성 위에 서로를 더 알아가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서로를 위해 준비하는 일을 성실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복음의 전파에서 중매의 역할은 최초의 만남만을 주선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바울 사도는 지금 고린도의 저자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여기 예수라는 좋은 신랑이 있다고 선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에게 이 편지를 쓴다.
그가 “중매”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고린도 교인과 예수님 사이에 적용한 것이다.
이들은 예수를 알기 시작한 예비 신부 단계를 넘어서 이제 구체적으로 결혼을 준비하는 자들이다.
그것은 실제적으로는 이미 예수와 한 몸이 된 신부가 온전한 가정을 이루도록 어떠한 자가 되어야 하는지를 돕는 일이다.
영적으로 “중매”는 경우에 따라 전도도, 양육도, 제자도의 훈련도 다 포함한다.

어느 단계든지 결국의 목표는 신부가 “정결한 처녀로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려지는 것이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을 준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부패”할 수 있는 여지가 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인류의 첫 여인 하와가 그러했다.
사실은 그의 남편 아담도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실패했다.
“부패”란 무엇인가?
원래의 정상적인 상태에서 나쁜 쪽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예수를 신랑으로 만난 신부가 “다른 예수”를 만나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말해서 외도요 불륜이요 간음이요 공적인 결혼식에서 서약한 것을 어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 스스로 이러한 부패의 성질을 이미 가지고 있지만
“중매”가 역할을 잘못하여 “다른 영”과 “다른 복음”을 받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러한 잘못된 “중매”의 속임수에 사람들이 매우 잘 넘어간다는 사실이다.

예수를 믿고서도 악한 “중매”에 현혹될 수 있다.
가장 미혹되는 영역은 “외모”와 관련된 부분이다.
말을 잘 못하거나 남루하거나 높은 직위에 있지 못하거나 하는 것은 “중매”의 역할에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 미혹되어 “중매”가 전하는 예수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가 돕는 신부의 준비를 경솔히 여기는 일이 벌어진다.
“중매”를 외모로 판단하여 거부하는 사이에 화려한 외모의 잘못된 중매들이 와서
“다른 예수”를 전파하고, “다른 영”과 “다른 복음”을 받게 한다.
바울 사도는 진정한 “중매”의 모습은 외모에 있지 않고,
예수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전하는 지식과 자신을 낮추고 신부들을 높여주는 겸손과
어떠한 누와 폐도 끼치지 않는 자급에 있음을 강조한다.
예수를 “중매”하는 자는 진실로 그의 (예비)신부를 “사랑”하는 자다.

그러나 잘못된, 악한 중매들이 있다.
그들의 본질은 속임수요 거짓이다.
그런 사람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다.
이들은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며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다.
이들의 특기는 오로지 “가장”이다.
그것은 진실, 곧 그들의 진면목의 반대다.
그리고 그들은 진실로 “사탄의 일꾼”이다.
아!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부를 사탄에게 중매하려는 자다!

바울은 “중매”의 단계나 범위를 가장 초보적이고 기초적인 ‘소개’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아! 나는 정말 “중매”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구나.
어느 때는 양육까지 도운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예수님을 영접하는 데까지만 가고는 더 잘 돌보지 못한 형제가 마음에 걸린다.
아, 나에게 “중매”로서의 “열심”이 참으로 부족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