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3:1-22,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자)

시인이 “의인들”과 “정직한 자들”을 불러 “여호와를 즐거워”하며 “찬송”하고 “감사”하라고 명령한다.
명령문의 형태지만 그 의미는 함께 하자는 청유라고 할 수 있다.
또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서술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거나 찬송하거나 감사하지 않는 “의인들”과 “정직한 자들”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러한 자들의 특권이요 일상이기 때문이다.

“의인”과 “정직한 자”는 물론 세상의 도덕 기준에 합격한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서 “의인”이요 “정직한 자”라고 부르신 자들이다.
세상은 오히려 그들을 거의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역사 현실에서 그들은 대체로 ‘편협한 자’, ‘어리석은 자’, ‘불편한 자’로 매도되어 왔다.

그들은 누구인가?
누가 “의인”이요 “정직한 자”인가?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자들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줄 아는 자’다.
이 지당한 일이 세상에서 결코 보편적으로 되지 못하는 것은
세상이 하나님을 싫어하기 때문이요, 세상 자신이 ‘하나님’ 행세를 하려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결과가
자기가 하나님께 굴종하게 되고 자신의 자율성을 상실하며 부자유하게 될 것이라고 상정한다.
아니 확신한다.
그리하여 자신이 주인이요 신임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야 자신이 자유로운 자가 된다고 주장한다.

사실은 의롭고 정직한 그들의 고결한 품성 때문에 그들─“의인”과 “정직한 자”─이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것은 아니다.
순서는 그 반대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이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것이었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의인들”이요 “정직한 자들”이라고 부르신 것이다.
그들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기에 그들이 “의인”과 “정직한 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찬송”하고, 특히 “감사”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격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가르쳐주심으로써만 사람이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그 총명한 지혜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 존재에 주셨는데
죄로 허망하여진 인간의 마음은 더 이상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다.
기껏해야 막연히 인간보다 커 보이는 자연을 어머니로, 신으로 우러를 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려주시는 그 감화에 의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 감화에 마음이 움직이는 자가 있고 여전히 굳은 마음으로 거부하는 자가 있다.
성도는 그 감화에 순종한 자인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움직이셨기 때문이지
그러기도 전에 그들이 하나님께 먼저 나아간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성도가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이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감화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세상이 거의 모두 ‘신’을 말한다.
신의 존재를 완전히 거부하는 자가 많은 것 같지만
그것은 그렇게 말함으로써 결국 자신이 ‘신’으로서 최고의 권위가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세상은 ‘신’을 말하고 안다고 하지만 참으로 신이신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한다.(로마서 1:21)
바울의 이 선언은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의 반증이다.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 곧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성도는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며, “감사”한다.
“의인들”과 “정직한 자”들이 “여호와를 즐거워”하며 “찬송”하고 “감사”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 ‘감화’로─ 하나님이 누구신지 안다.
하나님의 “정직”한 말씀과 “진실”한 행동, 하나님께서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을 안다.
세상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한 것을 아주 잘 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생을 살피”시며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 살피”시는 것을 늘 경험한다.
이 앎과 경험이 곧 즐거움과 찬송과 감사로 된다.
알고 경험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찬송하며 감사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정직과 진실과 공의와 정의와 인자와 인생을 살피심을 알고 경험한다.
그것으로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송하며 감사드린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산다.
하나님께서 누구신지를 아는 자는 나의 삶도 그렇게 되기를 흠모하여 변화된 자로 산다.
아,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하시며 그 감화에 순종한다.
이것이 오늘 내가 정직하고 진실하고 공의롭고 정의로우며 인자하고 사람들을 살피는 자로 살아야 할 즐겁고 감사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