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2:1-11,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다윗은 이 시의 마지막 단락에서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라고 말하면서
왜 이 시를 썼는지 의도를 밝힌다.
그는 먼저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거기서 얻는 교훈을 후대의 성도들에게 전한다.
다윗, 그는 참으로 위대한 인물로서 우리에게 가르칠 충분한 자격이 있는 자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중세의 교회가 지어낸 이른바 ‘성인’(聖人)은 아니다.
그 자격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그런 단어나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다윗이 모범적 성도로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은 그가 완전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는 자신의 “허물”과 “죄”를 말한다.
물론 성경적 의미에서 죄와 허물이 없는 사람보다 그것을 하나님께 고하며 회개하는 자가 더 온전한 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점에서 다윗은 모든 죄인들의 모범일 것이다.
그는 죄를 지은 자로서는 모범이 될 수 ─가르칠 것이─ 없지만
그것을 회개한 자로서는 모범이 된다.
가르칠 것이 많다.
그런데 그의 회개는 어떠한가?
그는 죄를 짓자마자 회개함으로써 모범을 보이고 그러므로 가르칠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심지어 죄를 숨기고 입을 다물어 회개하지 않은 경험도 털어놓는다.
그렇다.
다윗이 내게 가르치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천사처럼 하늘에서 산 자가 아니다.
그는 나와 비교할 수 없이 온전히 살았지만
죄와 허물과, 그것을 회개하는 과정에서의 실책도 있는 자였고,
그러한 모습들이 오히려 성도들이 공감하며 같이 나누고 배울 수 있는 자다.

오늘 다윗의 시는 허물이 없는 자, 죄를 짓지 않은 자의 복이 아니라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의 복을 말한다.
이어서 그가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죄가 없는 자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죄를 용서받은 자다.
그는 이미 지은 죄가 있지만 그것을 용서받았고 그리하여 죄가 없는 자가 되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죄인의 회개, 즉 자기 죄의 “자복”(고백)이며, 하나님의 용서다!

그런데 이 진리를 선언하는 다윗은 당연히 죄인으로서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를 받은 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고 또한 우리에게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더 나아가서 그가 회개하기를 주저하고 지체하고 끝까지 버텼던 경험을 말한다.
그는 하나님께 자기 죄에 대해 “입을 열지 아니”했다.
그 “죄악을 숨기”려 했다.
이 시의 배경이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밧세바를 간음하고 그의 남편 우리야를 죽게 한 죄를 짓고 그가 했던 행적이 바로 떠오른다.
그때 그는 선지자 나단이 처음에 우회적으로 누군가의 죄를 지적할 때
입을 싹 닦고 ‘정의’의 편에 서서 그 죄인을 “정죄”했다.
그는 ‘정의’로운 왕 행세를 끝까지 하려했다.
그는 자기 죄에 정직하게 대면하지 않았고 의를 가장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내심으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에게 온 선지자 앞에서 모든 것이 드러나고서야 그가 회개를 한다!
그는 회개할 것이 없는 자처럼 행세했고,
죄를 회개하는 자가 아니라 죄를 “정죄”하는 자의 역할을 하려 했다.

그러나 다윗은 이 시에서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무모한 것인지를 고백한다.
그는 분명히 속으로 자신의 죄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공언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에게 수치스러워서, 자존심과 권위가 실추되어서일 것이지만
사실은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회개를 거부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누르”심이 있었다!
그에게서 “진액이 빠져” “종일 신음”하고 “뼈가 쇠하”는 일이 있었다!
아, 하나님께서 다윗을 긍휼이 여기신 것이다.
그가 회개하도록 그를 괴롭게 하신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냥 멀리서 보고만 계셨다면
─나단 선지자를 보내지 않으셨다면,
나단의 우회적 비유를 ‘정의’로 받아넘기는 꼴을 보고만 계셨다면─
그는 회개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누르셨다!
그의 양심을 짓누르셨다.
그의 자존심과 권위가 무너지게 하셨다.
이것은 얼마나 크고 감사한 은혜인가!
하나님께서 나도 누르셔서 나로 회개케 하셨던 그 은혜를 기억한다!
그리하여 나로 죄를 토설하고 살게 하신 그 긍휼과 자비를 기억한다!
그리하여 다윗은 내게 스승이다.
그는 나를 가르친 자였다.
주께 ─그리고 사람에게─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는 자가 얻는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시는 은혜, 주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복”을 얻게 하였다.
나는 또, 역시, 거듭 다윗에게서 배울 것이다.
신실한 스승 다윗이 내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나를 “주목하여 훈계하”는 말을 들을 것이다.
그의 가르침과 훈계대로 참으로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신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