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1:1-24,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앞의 시에서 계속 그러하지만 이 시는 다윗이 처한 곤고한, 끔찍한 상황을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들이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내소서”
이 간구는 그가 어떤 사정에 처해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원수들의 올무에 갇혀있다.
그러나 그에게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간구에 즉시 응답하지 않는 사실일 것이다.
이 시에서도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구원하셨다는 고백이 나올 것이지만
그의 간구가 너무도 탄식과 반복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응답을 위해 그가 오래 기다려야 했다는 것을 충분히 암시한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시편 90편)을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거기서 모세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탄식하였고,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라고도 하였다.
다윗은 이 시에서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라고 부르짖는다.
대적들의 “욕”, 친구들의 피함, 무리의 “비방”, 사방의 “두려움”이 그의 현실이다.
그는 “죽은 자”처럼 “잊어버린 바” 되었다.
그는 자신이 “깨진 그릇과 같으니이다”라고 고백한다.

원수들로 인한 고난으로 고통스러울 뿐 아니라
하나님께 간구하는데도 즉시 응답되지 않는 상황이면 얼마나 절망스러울 것인가!
그때 웬만한 사람(성도)들이면 하나님께 대한 불평과 원망에 빠지기 시작하며
심지어는 하나님을 불신하고 자기의 방책을 찾기 일쑤다.
기도를 포기하고 사람과 세상의 방법에서 살 길을 찾는다.
아마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기도를 중지하지 않아도
그 마음에는 하나님께 대한 섭섭함과 불만이 커질 것이다.
다윗도 마냥 하나님만 찬양하고 있지는 않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체험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생생히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약속을 되뇌고 그것을 굳게 믿으며,
심지어는 지금 고통스럽게 원수에게 먹히는 것으로 끝나도 그것이 끝이 아니고 영원한 영광의 날을 소망하여 기쁘고 감사하다고 고백하는 것으로만
그의 기도가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
이런 간구는 그의 절망과 두려움과 하나님께 대한 조바심도 포함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
─초인적으로 견뎌내고 그까짓 것 아무렇지도 않다고 당당히 선언하는─
영웅적 행동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께 탄식하고 절망하는 마음을 아뢰고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이다.
그럴 정도로 자신의 약함을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기도한다.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주께 의지”한다는 것은 아주 잘 믿어서 더 이상 간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다윗은 이 고백과 함께 ‘계속’, ‘거듭해서’ “나를 건져 주소서” 하고 간구한다.
계속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께 계속 탄원하는 것이,
나의 절망과 아픔과 두려움과 소원을 계속 아뢰는 것이 “주께 의지”하는 것이다.
다윗은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한다.
“그러하여도”
─상황의 변화가 없어도, 원수의 대적은 날로 더하고, 하나님의 응답은 더디고, 아! 나는 “깨진 그릇과 같”아도─
다윗은 “주께 의지”하며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고 ‘계속’ 고백한다.

결국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한다.
그는 원수의 “비밀히 친 그물에” 갇혀있었지만
이제 그는 하나님께서 “내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다고 고백한다.
그의 “발”이 “원수의 수중”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넓은 곳”에 있을 뿐 아니라 ‘세워졌다’!
“넓은 곳”,
우물을 파면 원주민들이 와서 시비를 걸 때 이삭은 양보하고, 또 양보하다가
드디어 그들이 침노를 포기하였을 때 그는 그 우물을 “르호봇”이라고 이름 붙이고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다.(창세기 26:22)
“넓은 곳”, 다툼이 없는 곳, 원수의 대적에서 해방된 곳,
드디어 하나님께서 “건져” 내신 곳이다.
그것이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이며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다!
“그러하여도 ··· 주께 의지”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두신 은혜”요 그의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다.
수가 틀리면 원망하고 기도를 중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기를 원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