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0:1-12, 주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오늘 본문도 원수로 인한 고통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다윗의 시다.
흔히 감사와 찬양은 내가 잘된 것을 전제한다.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잘 되기만 하는 경우도 있고,
여러 고비를 넘기고 결국 잘 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성도가, 특히 고난 가운데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간구하여 형통하게 되는 것은
당연히 감사와 찬양의 근거가 된다.

내가 어떤 상태에 있었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하셨는지를 기억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것을 바로 알아야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다.
큰 은혜를 얻고도 자신이 무엇을 받았는지를 모른다면,
자신의 상황이 처음에 어떠했다가 나중에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자세히 헤아리지 않는다면
감사하지도 찬양하지도 못할 것이다.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아는 데서 우리의 믿음은 자란다.

다윗은 이 시에서 그 과정을 들려준다.
하나님께서 원수로부터 다윗을 구해내셔서 그들의 궤계가 이루어지지 않게 하셨다.
그는 상했고 죽을 뻔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고쳐주시고 살려주셨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고난에서 구원하시고 형통하게 하셨다.

그러나 다윗은 그 과정에 있었던 더 자세한 이야기를 숨기지 않는다.
그는 어려움에서 단번에 구출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원수가 쉽게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다윗이 말하는 일들은 원수의 끈질긴 방해나 반격이 아니다.
그는 원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행하신 일에 초점을 두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노하시기도 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얼굴을 가리셔서 근심하기도 했다.
그는 심지어 그 과정에서 이대로 죽는 것은 아닌가 하고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
이로 보건대 그가 말하는 “울음”이나 “슬픔”이나 “베옷”은
원수뿐 아니라 ─어쩌면 원수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한 “울음”과 “슬픔”과 “베옷”이었던 것 같다.

이 시의 정확한 역사적 배경은 여기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아마도 다윗이 원수에게 극심한 고난을 당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셔서 구원하시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고 진실하게 대면하는 순간들을 거친 것 같다.
그는 원수의 공격으로부터 구출되는 일뿐 아니라
그 고통 속에서 자신이 ‘정화’되는 일도 경험하였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노염”에 직면해야 했다!
물론 다행히 “그의 노염은 잠깐”이었다.
그러나 고난으로부터 구출되는 중에 하나님의 “노염”을 당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는 원수로부터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했는데 하나님께서 그에 대해 노여워하시니 얼마나 괴로웠을 것인가!
아마도 그 순간이 결코 “잠깐”으로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그것이 짧은 순간이었다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그 시간이 정말 짧아서라기보다는 “평생”이나 지속되는 “그의 은총”을 알기 때문이다.
주의 노염과 주의 은혜를 어떻게 길이로 비교할 수 있을까.
주님의 노여움은 주의 은총을 베푸시기 위함 아닌가!
주께서 그를 고난에서 구하실 뿐 아니라 그를 정결한 자로 자라게 하시기 위해 훈계하신 것 아닌가!
그 꾸짖음을 통해 그는 영원한 은혜를 받은 것 아닌가!

그리하여 다윗은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고 “주의 성도들”에게 권한다.
그것을 “여호와를 찬송”할 이유로 제시한다.
“거룩함”이란 ‘구별됨’이다.
절대적인 완전하심과 높으심에서 하나님은 누구와도, 무엇과도 구별된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로우심과 은혜와 자비, 이 모두가 구별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거룩하심에는 당연히 하나님께서 다윗의 원수뿐 아니라
다윗 자신에 대해서도 행하시는 공의로운 판단이 포함된다.
하나님은 성도로 하여금 죄에 직면하게 하신다.
그 죄에 대해 곤고하게 하신다.
거기서 하나님의 “노염”을 겪게 하신다.
그 순간은 참으로 “울음”이 터지며, “슬픔”에 빠지며, “베옷”을 입은 듯할 것이다.
그러나 진실로 하나님의 “노염”은 성도를 죄로부터 구별되게 하는,
즉 하나님의 “거룩함”을 더욱 배우고 그에 감사하는 학습과정이다.

아마도 그저 모든 과정이 생략되고 형통만 되기를 바라기가 참 쉽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 “거룩함”으로 나를 구별하심으로 형통 이상으로 나를 온전케 하시는 것이 진실로 감사하지 않은가.
아, 나도 하나님의 “노염”을 기억하고,
만일 그것이 없었다면 더 큰 “은총”을 얻지 못했음을 감사한다.
베옷을 입어야 할 슬프고 아픈 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를 정화시켜주셨던 그 귀한 “은총”의 시간을
내가 어찌 기억하지 않으랴, 감사하지 않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