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8:1-9, 위선적 악인들 앞에서의 간구)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 간구하는 시가 이어진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또 다른 위기에 직면했다.
원수들은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들의 마음에는 악독이 있”는 자들이다.
군대를 동원하여 전쟁을 일으켜 “내 살을 먹으려고” 온 무지막지한 폭력적 원수들과는 다르다.
이들은 말과 행동이, 겉과 속이 다르다.
혹은 “이웃에게” 하는 것과 내게 하는 것이 다를 수도 있다.
이들의 특징은 위장이요 위선이다.

그것은 이들이 원수나 악인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이 더 큰 위험이요 위기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다윗이 아무 고난을 받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주위에는 악인도 원수도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원수의 전략이다.
자신을 위장하여 안심시키고 방심하게 하고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
아주 쉽게 공격할 기회를 포착하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다행히 다윗은 이들의 위선과 위장을 간파했다.
그러나 이들의 전략이 하도 뛰어나서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원수의 악의를 전혀 알지 못하고
다윗이 너무 민감하고 편집증 증세에 빠진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화평을 말하”는 것만 들어온 “이웃”이란 다윗과 같은 불안과 염려와 두려움을 가질 수 없다.
이 이웃들은 “그들의 마음에” 있는 “악독”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러한 때에 다윗은 “이웃”들을 의지하지 않는다.
그는 “이웃”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다윗은 자신이 고난을 당하고 있는 사실을 정확히 아는 자에게 나아간다.
그는 누구인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세상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원수의 이중적 행각, 그 숨겨진 악의와 술책을 아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아마 다윗도 속을 뻔했을 것이다.
이웃은 아예 그 속임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다윗은 나아가 부르짖는다.

아, 그런데 하나님도 다윗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것 같다!
혹시 진짜 다윗이 큰 착각에 빠져 ‘애먼’ 사람을 잡을 뻔하고 있는 것인가?
다윗은 하나님께 이 교묘한 원수로부터, 그의 위장 책략으로부터 구해주시기를
보호해주시기를 그를 징벌하시기를 간구하는데 그보다 더 급한 요청이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내게 잠잠하”지 마소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이러한 기도는 곧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귀를 막으시고, 잠잠하시며 그의 간구하는 소리를 듣지 않으신다는 것을 이미 전제한다.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신다.
들으시는지, 듣지 않으시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만일 하나님이 ‘아냐, 네가 그를 잘못 본 거야. 그는 너의 원수가 아니야.
그의 마음속에는 악독이 없어. 네가 착각하는 거야. 마음 고쳐먹고 그와 잘 지내’라고 말씀하신다면
다윗은 처음에는 당혹스러워도, 그러나 하나님께서 대답하신 것이므로
그의 기도는 응답된 ─하나님께서 들으신─ 기도다.
그러면 다윗이 그 응답에 따라 마음을 바꾸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암시도 주지 않으신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일단 기도를 들으시기를 간구하는 것 때문에 그가 본래 기도하려는 내용을 제쳐두지 않는다.
그는 왜 자신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기를 간구하는지 그 내용을 정확히 아뢴다.
그는 그 악인, 원수에 대해, 그의 이중적 위선적 위장 전략에 대해 사실대로 아뢰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대책을 간구한다.
하나님께서 그 악을 “그 마땅히 받을 것으로” “갚으”시기를 간절히 아뢴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이내 탄식에서, 간구에서, “찬송”으로 바뀐다.
아!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이다.
그는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이유가 그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라고 밝힌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
다윗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다!
그는 이미 이 “도움”을 하나님께서 실행하신 것으로 고백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 원수의 위장 책략을 분쇄하시고 그의 위선을 벌하신 것이다.
다윗이 간구한 대로 “그들은 파괴”된 것이다.
그들은 다시 “건설”되지 못할 것이다.

다윗도 처음에는 원수의 속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고난 가운데 있는 사실을 처음부터 잘 알고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이 모르는 그것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다.
사람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겉만 알 뿐이지만 하나님은 그 속을 아신다.
그 내면 깊숙한 폐부를 다 아신다.
하나님은 이제 다윗이 막 호들갑을 떠니까 조사단을 보내 사태를 살펴보신 후에야 문제가 무엇인지를 아신 것이 아니다.
다윗이 기도하기 전에, 아니 악인의 전략이 시행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시고 아셨다.
그러므로 다윗의 기도는 처음부터 응답된 기도였다.
하나님이 모르셔서, 악해서 다윗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에 응답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그 권능을 시행하신 것이다.

폭압적 악인들에게 직격으로 당하든, 교묘한 이중적 위장전략에 더 곤고하게 되든,
성도의 기도는 동일하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도움을 간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하신 권능을 확실히 믿어 끝까지 든든하게 기다리든, 조바심으로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들으시기를 탄원하든,
그 모든 기도는 성도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도움을 바라는 간구다.
그리고 하나님은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인도”하신다.
“영원토록”
이것이 성도의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