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7:1-14,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파란만장한 삶속에서 다윗은 무수한 고난을 겪었다.
그렇다 하여 혹 한때 일상이 되었을 고통과 절망과 두려움을 그는 즐기지 않았다.
그러한 것을 즐기는 이가 있다면 그는 기쁨과 소망과 평안을 모르는 자이든지,
아니면 실제로 아직 고난을 겪어보지 않고서 그저 감상적 사치를 하고 있는 자일 것이다.
다윗은 고난이 가져다주는 괴로움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께 매어 달린다.
믿음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 감각을 갖는 것이 아니라
어느 때에든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다윗은 지금 아주 심각한 고통의 현장에 갇혀있다.
그는 “악인들”, “대적들”, “원수들”, “위증자”, “악을 토하는 자”에게 둘려 직접적인 위협과 공격을 받고 있다.
그들은 다윗을 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한 나라에 대한 전쟁이 아니라 심지어 한 개인에 대한 전쟁이기까지 하다!
어마어마한 압력과 억압이 그를 찍어 누른다.
다윗은 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고 부르짖는다!
그것은 마치 굶주린 짐승들의 공격을 받는 것과도 같은 상황이다.
너무나 끔찍하다.

다윗을 돕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는 지금 혼자다.
아무도 그를 도와줄 수 없다.
아마도 모두 도망갔을 것이다.
그는 오죽하면 그의 부모님이 계셨더라도 그를 버렸을 것이라고,
그 정도로 누구도 그를 도우러 가까이 올 수 없는 험악한 상황이라고 탄식한다.
아! 나는 이러한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내게도 약간의 어려운 일들이 있었겠지만 나는 편안한 삶을 살아왔다.
식민과 전쟁을 경험한 세대에 비해, 극빈과 상실과 장애의 고통을 겪은 이들에 비하면
나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다윗은 여기서 지금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
압도적인 상황의 아래에서 사람들은 극도의 분노 속에 반격과 보복을 획책한다.
또는 그 어떤 생각의 능력도 완전히 상실하고 극한의 무기력에 빠진다.
혼자 다 하겠다고 날뛰든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공황에 함몰된다.
그러나 다윗은 어떻게 하는가?
그는 자기 혼자 모든 것을 해내기 위해 광분하고 있지도 않고,
절대적인 절망 속에서 정신을 완전히 잃은 자가 되지도 않았다.
자기해결도 자포자기도 그와는 멀다.
그는 이 상황의 변화를 위해 그가 나설 수 없는 무력함을 알지만 그에 방치되지 않는다.
그는 전능자가 되어 심판을 수행하려고 분연히 일어나지 않지만, 사실 그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란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슬픔과 외로움과 두려움과 무서움을 아뢰는 것이다.
하나님께 도와주시기를 사정하고 원수의 보복을 탄원하고 공포로부터 벗어나 든든한 믿음을 갖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그는 모든 악한 상황과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솔직히 고백하는데,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지식과 믿는 믿음을 고백한다.

앞의 시편들에서도 나온 말씀들이 일관되게 이어지는 것은
‘하나님을 우러러보는 것’,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주의 얼굴을 찾으리”라, “여호와를 기다릴” 것이라는 고백이다.
이것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며, 바로 이것만이 그의 할 일이다.
그리고 이것이 어떤 영웅적 자기방어, 자기해결보다 강하고 선하다!

다윗이 이 고난의 악한 상황 가운데도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유와 목적은 한 가지다.
하나님께서 그를 “영접”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고, 그것을 위해 그리 한다.
지금 누가 그를 “영접”하겠는가?
원수들이 그를 쫓고 찾는 것은 그를 “영접”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를 잡아먹으려는 것이다.
그의 살을 먹으려는 것이다.
그것은 “영접”이 아니다.
“영접”이란 그를 선하게 대하는 것이며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을 그는 “확실히 믿었”다─
그와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이며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아니하실 것이다─
아! 그를 보호하는 것이며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는 하나님이시다─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이다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본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고 혹 부모까지 그럴지라도, 그러한 악한 상황에서라도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이것이 다윗이 한 일이다.
그리고 이것이 성도의 할 일이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하신 일을 다윗도 하였고,
이제 나도 그렇게 하기를, 가끔이 아니라 늘 그렇게 하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나를 “영접”하시는 하나님을 내가 떠날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