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5:1-22,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시인 다윗은 어제 시에서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라고 요청했고 그것은 오늘의 시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단지 차이가 나는 것은 어제 본문은 “너희”, 곧 성도에 대한 요청이었고,
오늘 말씀은 다윗 자신의 행위에 대한 고백이다.
‘머리를 들라’는 것은 어제 시의 문맥에서 “영광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들어오시도록 문을 열고 겸손함으로 맞이하라는 요구다.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나는 작은 자로 ‘머리를 들어’ 하나님을 높이 올려보고 찬양한다.
오늘의 시에서 다윗이 고백하는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가
바로 고개를 들어 높으신 하나님께 향하는 성도의 모습이다.
이것은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
“내가 주를 바라오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라는 구절로 반복된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냥 높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보다는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 도우심을 간구하는 간청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만일 고개와 시선을 아래로 향하여 상대방에게 말한다면
그의 위치가 듣는 자보다 높은 데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리고 그는 아랫사람에게 뭔가 지시하거나 명령하고 꾸짖는 말을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그렇게 하지 못한다, 않는다.
나는 아래에 있고 하나님은 높이 계시다.
나는 언제나 ‘머리를 들어’ ‘하나님을 우러러볼’ 뿐이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도 그렇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청할 때도 그러하다.

다윗은 지금 “고난” 가운데 있고 “곤고와 환난”을 당하고 있다.
그의 마음에 “근심”이 많으며 그는 “외롭고 괴로”워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그것은 “수가 많고” 그를 “심히 미워”하는 “원수”들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고개를 내리깔고 하나님께 명령하고 꾸짖는다.
또는 고개를 뻣뻣이 치켜들고 하나님께 삿대질을 하며 대든다.
더 어리석은 자는 아예 하나님을 생각지도 않는다.
그러나 성도는 그러한 때에 하나님을 “우러러보”며 하나님께 모든 사정을 아뢰고 도우심을 간구한다.
그는 자신의 문제와 괴로움을 다 고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불평을 토하는 방자함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문제를 아시고 고통을 익히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성도의 신음과 고통의 토설은 하나님께 대한 “의지”다.
성도는 하나님께 솔직하다.
자기 스스로 감정이 정제될 때를 기다렸다가 예의를 갖추어 신을 알현하는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하듯이 그저 울며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눈물을 닦고 세수하고 화장한 뒤가 아니라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나아간다.
외로움과 괴로움을 다 해결하고 나아가야 경건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그것을 토하는 것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다윗은 지금 그렇게 하고 있고 성도는 그를 따른다.

이 “곤고와 환난” 가운데 다윗은 이 모든 원인을 “원수”에게만 돌리지 않는다.
이 순간 그는 자신의 “죄악”을 기억한다.
그는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한다.
그것이 너무 괴롭다.
원수가 무고하게 억울하게 그를 괴롭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그의 옛 죄와 허물이 원수들에게 그를 대적할 빌미를 주었을 것이다.
혹은 이전의 죄악에 대해 하나님께서 지금 징벌하고 계신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은 혹 근거가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누구나 돌아볼 죄가 있는 자요 죄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 다 용서를 받은 자라도 계속 근신하며 경성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따라다닌다.
그것은 성도를 겸손하게 하는 좋은 도구로도 작용한다.

이때 다윗은 하나님께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기를 간구한다.
자기는 그 죄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지 마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만일 내가 그 죄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이런 기도를 할 수 없다.
내가 지은 죄,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용서받은 그 죄를
내가 어찌 기억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그 죄를 기억하지 않는 순간 나는 다시 방자함에 빠져 그 죄를 짓고야 만다.
그러므로 나는 “내 젊은 시절의 죄를 기억”한다.
그러나 죄의 기억이 나를 멸망으로 이끌지 않는 가장 중요한 전제는
하나님께서 그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용서하신다는,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죄를 기억하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억해주지 않으시는 것,
그것이 성도의 겸손과 경성이요 하나님의 관대하신 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