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2:1-13, 그만두노라)

바울 사도가 꽤 격앙된 것처럼 보인다.
부당하게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그에 대해 앙갚음하고 자기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사도로서 지금 자존심 상한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로 인해 고린도 교인들이 과오를 범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육신”을 기준으로 삼아 사람을 판단하고
결국 “외모”로 우열구분과 선호 및 배제를 행하는 것에 바울은 격앙하고 있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며 고쳐져야 한다.
그것은 지적을 받고 회개해야 하는 문제다.
왜냐하면 육체의 기준에 의한 자랑은 결국 자기를 높이는 것으로 귀결되고,
그것은 곧 복음과 하나님의 영광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바울은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 그것이 자랑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자칫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는 가운데 나 자신이 높아질 여지가 충분히 생기는 일도 벌어진다.
가령 “주의 환상과 계시”에 대한 특별한 경험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도 모른 채 “낙원으로 이끌려” 가는 신비한 체험─은
분명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영광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다.
그러나 이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상적인 일이 아니므로 그 특별함 때문에 체험자가 높아질 가능성이 생긴다.
그리하여 바울은 이러한 경우마저도 말하기를 삼간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높이다가 자기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이에 대해 더 말하기를 “그만두노라” 하고 멈춘다.
자신이 높아질 소지가 있는 것에 대해 바울은 명확한 한계를 긋는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드러나는 일일지라도 내가 곁다리로 높아지게 될 때
나는 분명히 내 안에 공명심을 갖는다.
나는 기필코 다른 사람을 ─그러한 신비한 경험을 하지 못한 형제를─ 비교하고 판단하고 만다.
그 정도로 나는 약한 자며 조심해야 하는 자다.
그러한 겸비한 생각을 할 때 자신에 대한 일체의 높아짐의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일에 바울은 지금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그만두노라”.
하나님을 높이다가, 그리스도의 능력을 자랑하다가 어부지리로 내가 높여질 빌미가 보일 때
그는 바로 “그만두노라”.
내게 참으로 이러한 절제와 겸비가 부족하다.
어쩌면 내가 의도적으로 나서서 주도하지 않고도 은근히 내가 슬쩍 높여지기를 바란다.
나는 교만하여서가 아니라 겸손하다가 자연스레 ─마치 하나님의 선물인양─ 높아진 것으로 보이기를 원한다!
나는 이러한 나의 치졸한 속내를 잘 안다.
그러므로 “그만두로나”, 이것이 내게 절대로 필요하다.

바울은 이와 반대로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는 초라함, 능력 없어 보이는 일에 대해서는 오히려 자랑한다.
그는 그의 낮음만 얘기하고자 한다.
그는 사도인데도 혹 다른 사람의 질병은 고쳐도 자신의 “육체의 가시”는 기도하고도 고치지 못하는 ‘약점’을 발설한다.
어제 본문의 끝에서는 그가 다메섹 성에서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도망친 이야기까지 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이 위기를 피하게 하신 ‘형통의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얼마든지 또 다른 비난의 빌미가 될 사도의 졸렬함으로 보일 수 있다.
사도가 당당히 “그리스도의 능력”을 행하여 사람들의 손에 들린 돌이 사라지고
그들의 팔이 마비되고 사도가 한 마디 하면 하늘을 울리는 우레로 대적자들이 나가떨어지는
‘역사’가 일어났어야 하지 않는가!
이러한 기대와 판단에 영 못 미치는 이야기를 바울은 “자랑”으로 하였다.
그렇다 바울이 자랑할 것은 그것뿐이다.
자신이 연약함!

그러나 그것을 왜 굳이 자랑하려는가?
동정심을 사려고?
아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의 약함 속에서 ─그가 “약한 그 때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는 약함 속에 처할 때
복음이 전파되고 사람들이 믿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일이 일어나기(일어났기) 때문이다.
즉 그가 자기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그때 드러난 “그리스도의 능력”과 “하나님의 영광” 때문이다.

이것이 아니고는 그는 잠잠할 것이다.
이런 것들을 그는 “그만두노라”!
내가 따라 해야 할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 그러한 것을 “그만두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