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1:16-33, 성도의 자랑)

고린도 교회에서 계속 문제가 되었던 것은 바울에 대한 판단이었다.
그 판단은 사실 비난이었는데 그것은 특히 바울이 다른 지도자들과 비교되면서 제기되는 문제였다.
그런데 바울 사도가 볼 때 이러한 비교와 판단과 비난이 올바른 기준에 의한 바른 행위가 아니므로 이를 시정해야 했다.

그 핵심은 “육신을 따라 자랑”하는 것이었다.
바울을 비난하는 자들은 다른 지도자들은 “자랑”할 것이 많은, “자랑”할만한 자들이지만
바울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기준이 “육신을 따라” 하는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즉 바울보다 낫게 여겨지는 자들은 “육신”적으로 자랑할 것이 많은 자들이고,
바울은 “육신”적으로 자랑할 것이 없다.

“육신을 따라” 하는 자랑이란 가장 흔하고 대표적인 것이 혈통과 ─히브리인, 이스라엘인, 아브라함의 후손─ 관련되는 것이지만
이점은 바울을 비난하는 데 이용될만한 요인이 되지 못한다.
바울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문제 삼는 것은 바울이 외적으로 드러낼 화려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판단이다.
사람들을 휘어잡는 권위적 언변과 태도가 바울에게 없고,
그는 밤낮 고난 받고 고생만 하는 초라한 모습으로 보였다.
진정한 사도라면 권위적인 풍채가 있어야 하고,
‘영적’으로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난이나 고생 없이 형통한 삶의 모범이 있어야 한다고 이들은 생각했다.
이에 못 미치는 바울은 결국 사도로서의 자격이 의심스러운 자였다.

바울은 이러한 판단 기준이 얼마나 “육신”적인지를 지적한다.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판단이다.
“자랑”이란 ‘썩 훌륭하거나 남에게 칭찬을 받을 만한 것’을 드러내는 행위다.
자랑 자체는 가치 있는 것이 전제된다.
만일 가치 없는 것을 드러내며 “자랑”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바울의 말이 바로 그것이다.
“육신”적인 자랑, 즉 “육신을 따라 자랑”하는 것, 그 내용은 가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도의 ─사실은 모든 성도의─ 사명인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은
“외모”와 무관하며 “육신”적인 매력이나 ‘형통’과 상관없다.
복음은 어떻게 전파되며 하나님은 어떻게 영광을 받으시는가?
화려한 언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그대로 전함으로써 복음이 전파되며,
자신의 형통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복음의 전파는 언술의 재주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은 오로지 하나님이 높아지심에 있다.
“자랑”을 한다면, 곧 가치 있는 것을 드러낸다면,
결국 복음이 증언되고 하나님께서 능력을 행하신다는 사실뿐이다.

“육신”적인 자랑은 가치 있는 것을 강하다고 하고, 강한 것을 가치 있다고 한다.
즉 “육신을 따라 자랑”하는 자는 강한 것을 드러낸다.
그런데 정말로 그 강한 것으로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는가?
그러기보다는 대개 자기가 전파되고 자기에게 영광이 돌아간다.
그것이 바로 “육신”적인 자랑의 본질이다.
자기가 높아지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그 반대를 말한다.
나를 높이는 것으로서는 하나님을 높일 수 없다.
내가 영광을 받는 순간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지 못한다.
그 표본을 예수께서 전적으로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가장 극적인 상태의 수치를 당하셨다.
거기서 어떠한 영광 받을 만한 행위도 하지 않으셨다.
그는 정말로 실패한 자로 여겨지기에 합당했다.
그러나 그 순간 죄인을 구원하는 복음이 성취되고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다.
만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기적 쇼를 하셨다면
그 순간 공회원들이나 빌라도가 능력 있는 예수 앞에서 초라해지고 예수의 권위가 승리한 것으로 되겠지만
그러면 복음도 하나님의 영광도 무가치하게 된다.
즉 그것은 아무런 가치 없는 일이며, 그것은 결코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다.
예수님은 낮아지시고 실패자로 부끄럽게 낙인찍히심으로 복음과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가치를 드러내셨다.
예수님의 연약함이 가치 있는 일을 이루셨음으로 바로 그것이 “자랑”이 된다.
그리하여 바울은 ─성도는─ “약한 것을 자랑”한다.
왜냐하면 그리하여 복음이 증언되고 하나님께서 높아지시기 때문이다.
내가 어리석고 낮아지지 않으면 복음은 증언되지 않으며 하나님은 높아지시지 않는다.

문제는 아주 단순하다.
내 자랑을 할 것인가, 하나님 자랑을 할 것인가?
하나님 자랑은 내 자랑과 병행될 수 없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결코 자기 자랑을 하지 않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