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from October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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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31 묵상: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이라

by 이 병철

(시편 130-131편,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이라) 성전에 올라가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노래할 때 그 이유, 그 근거는 무엇보다 내 ―우리― 죄의 용서 아니겠는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나의 죄악이다. 주께서 나를 아신다. 내 죄악을 지켜보신다. 그리하여 나는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나아갈 수 없다.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

2019.10.30 묵상: 나를 괴롭혔으나 이기지 못하였도다

by 이 병철

(시편 129:1-8, 나를 괴롭혔으나 이기지 못하였도다) 성전에 올라가는 길에는 나 혼자만 있지 않다. 그 길은 공동체의 길이다. 그 길은 “이스라엘”의 길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성전에 올라가며 시편의 노래를 부른다. 지금 이들이 같이 부르는 노래는 무엇인가? 과거에 원수들로부터 당했던 괴로움과 고통의 기억이다. 그것은 상당히 긴 역사를 가진 슬픈 이야기다. “어릴 때부터” 우리가 당했던 괴로움이 있다. 그것을 […]

2019.10.29 묵상: 손을 수고하게 하는 복

by 이 병철

(시편 128:1-6, 손을 수고하게 하는 복) 시인은 성전에 올라가면서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것을 생각하며 노래한다. 그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손의 수고’와 관련된 복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일이 있을까?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이 어떤 시작이 가능할까? 만일 그러한 경건, 헌신, 사역이 있다면 그것은 기초 없는 건물이다. 모래밭 위에 […]

2019.10.28 묵상: 하나님이 세우시는 집, 지키시는 성

by 이 병철

(시편 127:1-5, 하나님이 세우시는 집, 지키시는 성) 다시 맞는 시편 묵상, 이 부분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 올라가면서 무슨 노래를 불렀을까? 무엇을 기억하며 노래했을까? 본문은 “집”과 “성”을 기억하는 노래다. 집과 성. 이것은 사람에게 가장 기초가 되는 생존 및 생활 단위다. 그것은 가정, 가족, 그리고 고향, 마을이다. 누구나 가정에서 태어나고 가족들과 인생의 첫 […]

2019.10.27 묵상: 미워하되 긍휼히 여기라

by 이 병철

(유다서 1:17-25, 미워하되 긍휼히 여기라)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이 무엇인가가 가장 중요하며 모든 것의 토대다. 그것은 곧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죄인들을 위한 대속으로 구원이 “단번에” 이루어졌다. 여러 단계를 거치지도 않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고, 부족하여 뭔가 보충할 것이 뒤에 많이 남아 있지도 않고, “단번에” 완전한 구원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이는 […]

2019.10.26 묵상: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by 이 병철

(유다서 1:1-16,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초대 교회에 곳곳마다 미혹이 있었다. 며칠 전의 요한이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들을 “미혹하는 자”로서 경고했다. 오늘 말씀은 교회 안에서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다. 그들은 “정욕대로 […]

2019.10.25 묵상: 진리에게서 증거를 받는 자

by 이 병철

(요한삼서 1:9-15, 진리에게서 증거를 받는 자) 요한삼서의 후반부에는 두 사람이 언급된다. 하나는 본받지 말아야 할 악한 자요, 다른 한 사람은 본받을 선한 자다. 이런 말씀을 볼 때 나는 본을 받거나 받지 않기를 취사선택할 위치에 있기도 하겠지만, 더욱 두려운 것은 내가 바로 그러한, 본이 될, 또는 본이 되지 않을 대상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나는 디오드레베와 데메드리오 중에 […]

2019.10.24 묵상: 진리 안의 나, 내 안의 진리

by 이 병철

(요한삼서 1:1-8, 진리 안의 나, 내 안의 진리) 사도 요한은 앞의 짧은 편지에서 이미 “진리”와 “사랑”에 대해 특별히 강조했다. 그리고 모두 “아는” 것과 “행하는” 것에서의 일치가 중요했다. 이 말씀은 이 편지에서도 동일하게 기록되고 있다. 오늘 본문에서는 “진리”와 관련하여 세 가지가 언급된다. “네게 있는 진리”, “진리 안에서 행한다”,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 첫째, “네게 있는 […]

2019.10.23 묵상: 미혹

by 이 병철

(요한이서 1:7-13, 미혹) 사도 요한이 처음부터 왜 그렇게 “진리”를 강조했는지 그 이유가 분명하다. 당연히 믿음이 “진리를 아는” 데서 시작하며, 그것은 곧 “진리를 행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진리”가 특별히 강조된 것은 바로 “미혹” 때문이다.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다! 초대 교회 때나 지금이나 언제나 그러하다. 마귀가 마지막 멸절되기까지 잠시라도 쉬는 시간이 있겠는가. 모든 시대에 미혹의 핵심은 진리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