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from January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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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31 묵상: 평안을 주시는, 괴롭게 하시는 주

by 이 병철

(마태복음 8:23-34, 평안을 주시는, 괴롭게 하시는 주) 예수님은 산상 설교로, 그리고 산 아래에서 수많은 환자들을 고치심으로 약속된 구세주인 것을 입증해가셨다. 사람들은 아직 확실히 알지 못했지만, 마태복음의 기록자는 이것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고되었던 대로 “우리의 연약한 것”과 “병”을 “친히 담당하시고” “짊어지셨”던 사건으로 이미 설명해준다. 예수께서 약속된 구세주이심이 계속 드러나면서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뉜다. 예수께 나아오는 사람과 […]

2019.1 30 묵상: 함께 하시는 예수, 예수와 함께 하는 제자

by 이 병철

(마태복음 8:14-22, 함께 하시는 예수, 예수와 함께 하는 제자) 산 위에서나 산 아래서나 예수께서 하신 일은 사람들과 함께 하신 일이다. 병자를 고치시기 위해 예수님은 그의 “집에 들어가”시고, 그가 아픈 것을 “보시고”, 그를 “만지”셔서 낫게 하신다. 예수의 함께 하시는 사역에는 말씀도 포함된다. 말이 무슨 함께 하는 일인가라고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예수의 말씀은 환자의 집에 들어가, […]

2019.1.29 묵상: 주여 원하시면

by 이 병철

(마태복음 8:1-13, 주여 원하시면) 예수께서 산에서 매우 중요한 설교를 길게 하셨다. 그 말씀의 결론은 “이 말을 듣고 행하”라는 것이다. 다른 것을 행하는 것―가장 흔하게는 자기가 생각하는 것, 시대의 주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을 행하는 데에 구원이 있다. 예수는 말씀하셨고 그것을 들었으므로 이제 행하기만 하면 된다. 이미 구원은 선포되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셨다. […]

2019.1.28 묵상: 이 말을 듣고 행하라

by 이 병철

(마태복음 7:13-29, 이 말을 듣고 행하라) 두 사람이 비교되고 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와, 듣고도 행하지 않는 자다. 물론 이론상으로는 말씀을 듣지 않고 행하는 자와 듣지도 않고 행하는 자로도 추가적인 구분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즉 모르고 행하는 경우란 행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일 그러한 경우가 있다면 그는 자신이 무엇을 […]

2019.1.27 묵상: 상대방의 처지에서

by 이 병철

(마태복음 7:1-12, 상대방의 처지에서) 산상수훈의 모든 가르침이 그러하지만 오늘 말씀은 더욱 부끄럽고 참담하고 경각하게 된다. 바로 그 지당한 ‘판단’에 관한 내용이다. 형제를 “비판하지 말라”, 헤아리지 말라. 한 마디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 뜻이 ‘옳고 그름의 분별’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를 드러내기 위해 혹독하고 위선적인 비판’을 하지 말라는 설명이 나의 문제를 조금도 줄여주지 않는다. […]

2019.1.26 묵상: 주를 섬기는 삶

by 이 병철

(마태복음 6:19-34, 주를 섬기는 삶) 세상에 두 주인이 있는 듯하다. 예수께서 언급하셨듯이 하나님과 재물이다. 아마도 현재 세상에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은 재물일 것이다. 그러면 두 주인이 주도권과 소유권과 통치권을 놓고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인가? 아니다. 주인은 오직 한 분이다. 만일 정말 두 주인이 존재한다면 인간은 둘 중 하나를, 더 현명하게는 둘 다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