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4:1-14, 기억을 위한 표징)

출애굽은 이미 애굽 땅에서 모세와 바로의 대립으로,
본격적으로는 열 가지 재앙으로 시작되었지만,
실제로 애굽을 떠나게 된 것은 홍해를 건넌 사건에서였다.
홍해가 지리적으로 출애굽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요단강은 제2의 출애굽의 시작이다.
출애굽의 목적지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 다 똑같이 걸어서 건널 수 없는 곳에 물이 갈라지고
그 사이로 마른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는 사건이었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하나님의 선하신 권능이었다.

요단강을 백성들이 다 건넌 후에
여호수아는 한 지파 당 한 사람이 각각 한 개의 돌을 준비하여
돌무더기를 쌓게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믿음에서 ‘기억’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나님은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도록 유월절 절기를 만들어주셨다.
기억은 무엇보다 대를 잇는 작업이며
특히 다음세대, 즉 이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을 위한 것이다.
기억은 전수되어야 한다.

요단강을 건넌 뒤에 만들어진 이 기억을 위한 표징,
열두 돌은 사실 그렇게 큰 기념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이 어깨에 멜 수 있는 정도의 돌이니
그 무게와 크기는 어마어마한 규모가 아니다.
열두 개가 모아져도 흔히 볼 수 있는 기념탑만큼 크지 않았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랬다.
기념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념이, 기억이 중요하다.
이제는 뭘 기념하는지도 모르게 큰 건축물만 유적으로 남아
관광지로 전락한 인간 문명들을 우리는 어디서나 본다.
그런 것에 반해 이스라엘의 기념은 기억이 중요했고
그것을 위한 표징이었다.
유월절이 그렇고 할례가 그렇고
성찬식이 그렇고 세례가 그렇다.

표징은 기억을 위한 장치다.
어떤 일을 나타내주는 도구(표시)다.
실체를 대신하는 상징이다.
결국은 기억을 위한 증거물이다.
표징을 보고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기억해낸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일 요단강을 건너게 하실 필요가 없다.
걸어서 건널 수 없는 강을 갈라서 물벽이 서고
그 사이를 건너는 기적을 매일 체험하게 하실 필요가 없다.
이스라엘은 나아갈 길이 있고,
행해야 할 사명이 있다.
이들은 요단강만 맴돌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의 기억은 중요하다.
그 기억은 그 일을 매일 일어나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매일 기억하면
그 일이 매일 일어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억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는가!
반면에 나는 얼마나 하나님께 대해 망각이 심한가!
나의 기억력은 얼마나 산만한가!
기억할 것은 쉽게 잊고 잊을 것은 고집스럽게 기억하고,
나의 기억장치는 신실하지 않다.

기억은 연속성을 위한 것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기억이 중단되는 것이다.
과거의 귀중한 사건이 이제 현재와 단절된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건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것을 막기 위해 부단히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을 잊고 사는 것을 막아야 한다.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와 여호수아의 권위와 지도력에 차등을 두지 않았다.
모세는 기억하고 여호수아는 잊고 하지 않았다.
그 반대도 하지 않았다.
백성들은 모세를 두려워하던 것 같이 여호수아를 평생 두려워했다.
그들의 권위가 동등하게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존속되었다.
기억되었다.
이에 비해 나의 기억은 얼마나 변덕스러운가?
얼마나 의리가 없는가!
기억이 얼마나 자주 바뀌는가!
권위를 존중했다가, 깔보다가, 좋아하다가, 멀리하다가…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진군을 하며 새로운 공동체로 거듭나고 있다.
홍해에서의 출애굽 1세대보다 더 나은 공동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