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2:15-24, 정탐의 보고)

두 명의 정탐꾼은 라합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다.
술 파는 집에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이므로
이곳에 잠입한 것은 정탐의 장소로서 선택을 잘 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거기서 여리고 사람들의 동정을 다 살필 여유가 없었다.
바로 낌새를 알아차린 사람들이 고발을 했고
왕의 사람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그리하여 두 정탐꾼이 여리고에 머물러 주로 한 일은 도피여야 했다.

그 도피는 이들의 첩보 감각에 의한 능동적 대처는 아니었다.
그것을 먼저 알아차리고 조처를 취한 것은 전적으로 라합이었다.
라합의 집에서 두 정탐꾼은 라합의 배려로 안전하게 숨을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바로 라합과 대화를 한 것이다.
두 정탐꾼은 여리고 사람을 만나거나
그들의 동정을 살피고 도청하고 첩보를 캐는 작업을 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라합 집에 숨어 있으면서
이들은 라합에게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들었다.
여리고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출애굽 소식을 소상하게 알고 있고
그로 인해 이들이 심리적으로 얼마나 위축되었는지가 드러났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라합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특수한 예가 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방의 한 기생이 출애굽 소식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사실이었다.
여리고 백성 가운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있다.
심지어 그는 출애굽의 소식을 들은 것만으로도 하나님을 믿는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여리고를 어떻게 하실지도 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므로 모든 것을 제대로 판단한다.

심지어 라합은 두 정탐꾼의 무사한 귀환을 위해 끝까지 최대한으로 돕는데,
그 과정에서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여리고 동족들에게 잡혀서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녀는 오로지 두 정탐꾼의 안녕이 염려되었다.
“라합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렵건대 뒤쫓는 사람들이 너희와 마주칠까 하노니”
그리하여 두 사람이 어떻게 해야 추적자들을 따돌릴 수 있는지
정확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산에 가서 사흘 동안 숨어 있다가
뒤쫓는 자들이 돌아간 후에 돌아가라는 것이다.
그 말 대로 하였더니 그 말 대로 되었다.
정탐꾼들은 안전하게 귀환할 수 있었고,
그것은 곧 정탐꾼의 목적인 여리고의 동태를 전하는 일의 완수를 의미했다.

그들의 보고는 무엇인가?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주셨으므로
그 땅의 주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
이 말은 라합에게서 들은 것을 정리한 것이다.
라합의 말로 충분했다.
라합의 말이 두 정탐꾼의 귀에 듣기 좋아서가 아니다.
이스라엘에게 가장 긍정적인 소식일 것이어서가 아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요
하나님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라합의 말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하나님께서 여리고의 상황을 다 일러주시는 것을 들었다.
그러면 이들의 할 일은 그것을 그대로 전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렇게 했다.
참으로 신실한 정탐꾼이다.
참으로 선하신 하나님의 권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