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2:1-24, 요단 저편, 요단 이편)

출애굽은 글자 그대로 애굽에서 나오는 것,
애굽의 학정에서 탈출하는 것,
해방되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지리적인 이동을 전제한다.
애굽 땅을 떠나 애굽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애굽의 권세와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출애굽은 아니다.
만일 애굽 밖에서 또 누군가의 종노릇을 해야 한다면,
누구의 지배 아래 들어간다면
그것은 출애굽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에게 이 두 가지 일이 일어났다.
애굽의 경계선인 홍해를 건너 애굽 밖으로 나갔으며
거기에서 이스라엘은 누구의 종살이도 하지 않았다.
홍해 밖 시내반도에는 애굽에 견줄만한 다른 세력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아직 진정한 출애굽이 아니다.
출애굽의 참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있었다.
그 예배는 자유로운, 자발적인 예배를 말한다.
만일 애굽의 경계 밖으로 나오는 데 성공하고,
거기에는 어떠한 지배적 세력이 없어 정치적으로 자유롭게 되었다고 해도
이들이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아직 출애굽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아직 애굽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출애굽의 첫 세대가 그러했다고 할 수 있다.
광야에서 새 세대가 나올 것이지만
불순종한 세대가 사라진다.
이스라엘은 아직 진정한 출애굽을 하지 못했다.

그 출애굽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이르러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자들을 하나님께 바치고 온전히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즉 의로써 땅을 다스리면 이루어지는 것이다.
드디어 그 일까지 이스라엘은 이루게 되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약속의 성취이며,
또한 이스라엘의 순종함으로 얻은 결과다.
하나님의 약속(계획, 뜻)이 없다면 순종이라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이 약속하셨어도 순종이 없으면 그 약속은 성취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은 하나님의 약속(주권)과 이스라엘의 순종으로 이루어졌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그리로 인도하시는데 거기에 순종한 것이다.

그리하여 요단 저편과 이편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할 땅을 얻었다.
그 땅은 하나님 없는 번영이나 발전이나 강대함이나 안전과 안정을 이룰 땅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직도 거기는 애굽이다.
그러나 모세와 여호수아의 시대에
이스라엘은 요단 저편에서 두 지판 반이 거주할 땅을,
이편에서 나머지 지파가 정착할 31개의 성읍을 확보했다.
그것은 기브온을 빼놓고는 모두 진멸을 통해 이루어졌다.
하나님께 대항하는 자와는 공존이 불가능했다.
하나님께 나아온 유일한 경우만 공존이 가능했다.
즉 요단 저편과 이편은 하나님께 나아온 자들만 사는 땅이 되었다.

가나안의 역사는 아브라함 이후만 따져도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까지― 660년이 더 된다.
그동안 그 곳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하나님께 반역하던 죄악의 땅이었다.
이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여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하는 자가 됨으로
이 땅이 온전케 된다.
성도는 바로 그러한 자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함으로 그 땅을 온전케 하는 자,
즉 하나님께 드리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