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6:8-27, 여리고 성을 온전히 바치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그 땅의 첫 성은 여리고,
이 성의 정복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그것은 마치 첫 열매, 첫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같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처분하시며 내가 간여할 수 없다.
모든 처리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면 된다.

그런데 하나님께 드린다고 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받으셔서 무엇을 하시는가?
소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잡수시는가?
돈을 드리면 그것을 주머니에 넣으시는가?
금을 드리면 그것으로 반지를 만들어 손가락에 끼시는가?
아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러한 것이 전혀 필요 없으시다.
하나님은 제단에 바치는 제물을 제사장에게
―때에 따라서는 제물을 가지고 온 자에게도― 먹을 것으로 주셨다.
하나님께 드림은 실제로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음식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번제는 완전히 태워버린다.
가죽을 제외하고는 ―그것은 제사장의 몫이다―
모든 것이 제단 위에서 불살라 태워진다.
그것은 참으로 값비싼 제사다.
그러면 여리고 성은 마치 그에 해당하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온전히 바치”라고 하셨다.
그것은 “남녀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들 중 어느 것도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자신이 관할할 수 없다.
남는 것이 단 한 가지가 있는데,
“은금과 동철 기구들”이다.
그것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며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 것이다.

세상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는 적군을 제압하여 자신의 용도에 맞게 활용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죽이는 것이 당연히 포함되지만
이용가치에 따라서는 살려서 노예로 삼아 필요한 노동력을 보충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자원으로 확보하여 이용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여리고 처리는 그러한 상식을 넘어선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재활용하지 않으신다.
다 죽이고 태우고 부숴버린다.
단 한 가지, 금속들만 성전의 도구로 사용할 여지가 있다.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다는 것은
소유권이 하나님께로 넘어가는,
그리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그것들이 활용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을 주시는 것은
이스라엘이 거기서 살도록 하기 위함도 있지만,
또 다른 중요한 의미는 심판의 집행이다.
가나안은 이미 패역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에 합당한 곳이다.
인신제사까지 행하는 종교들,
방탕을 숭배하는 제의,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지럽히는 모든 풍속들.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
그 심판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위한 것이지만,
또한 거기서 살게 될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표징이 될 것이다.
이들이 미혹에 빠질 일이 없도록
모든 죄의 세력들을 제거하고 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께 드리는 온전한 제물로서 완전한 파괴!
이 명령을 순종하는데 장애가 될 것들이 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이성적 ―특히 경제적― 문제제기.
‘이것은 낭비 아닌가?’
또 하나는 탐욕의 문제.
‘어차피 태워버려지는 것들, 내가 가진들 어떠랴, 이 귀한 것들!’
이성과 탐욕의 미혹을 이기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명령을 이스라엘 백성은 거의 완벽하게 순종했다.
그러나…